세계인 가슴 울린 소방관과 코알라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2월 12일 02시 55분



호주 산불로 화상 입은 코알라 발견
물 먹이며 상처난 발 어루만져 감동


화마가 쓸고 간 시커먼 잿더미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코알라 한 마리, 그리고 아기를 다루듯 코알라 앞발을 잡고 물을 먹이는 노란색 제복의 소방관.

최소 181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호주의 산불 참사 현장에서 카메라에 포착된 이 한 장면이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소방관 데이비드 트리 씨는 10일 멜버른 동쪽 머부노스의 숲에서 땅에 떨어진 작은 코알라를 발견했다. 코알라는 고통스러운 듯 끙끙대며 불길에 그을린 앞발을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 기척에 놀란 듯 엉덩이를 땅바닥에 내려놓은 뒤에는 겁에 질린 채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기만 했다.

트리 씨는 동료들에게 “물을 가져오라”고 외쳤다. 급히 생수병을 받아든 뒤 코알라의 동그란 코앞에 갖다댔다. 코알라는 목마른 아기처럼 꿀꺽꿀꺽 물을 받아 마셨다. 코알라들은 보통 물을 거의 안 마시고 나뭇잎을 통해 수분을 섭취하지만 뜨거운 연기 속에서 헤맸던 이 코알라는 쉬지 않고 입을 움직였다.

트리 씨는 그가 물을 다 마실 때까지 상처 난 앞발을 꼭 잡아주며 어루만졌다. 그리고 야생동물 보호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3도 화상 진단을 받은 코알라는 현재 치료를 받으며 회복 중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트리 씨는 “코알라가 마치 ‘나를 이 고통에서 구해 주세요’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며 “자연을 사랑하고 코알라를 다뤄본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호주 사상 최악의 산불 참사로 기록될 이번 화재는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호주가 자랑해온 야생동물과 자연환경에도 큰 타격을 줬다. 등에 불이 붙은 캥거루가 산 밑으로 튀어 내려가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등의 목격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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