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보다 더 빠른 추락… 구매력 키워 소비 늘려야
《“많은 나라가 좁은 내수시장보다는 수출을 통해 더 큰 기회를 잡으려 노력해야 한다.” 아시아의 눈부신 경제성장이 가시화되던 1970년대 중반, 로버트 맥나마라 세계은행 총재가 수출의 중요성을 설파하면서 한 말이다. 당시 ‘수출지향산업화(EOI·Export-Oriented Industrialization)’로 불리는 아시아의 성장 전략은 신성시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사상 최악의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 아시아의 경제기반은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경제위기의 진앙인 미국보다도 빠르고 깊은 추락이다. “수출 중심의 성장 시대는 갔다”는 진단 속에 내부에서 새 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제언도 끊이지 않는다.
▽아시아의 굴욕=11일 발표된 중국의 1월 수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7.5% 줄면서 증가율이 13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블룸버그는 “세계 3위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국가의 침체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은 아시아지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까지 낮췄다. 2007년의 9%는 물론이고 10년 전 아시아를 강타한 금융위기 때의 성장률보다도 1%포인트 더 낮다.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에 자산가치가 하락하는 현상)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소시에테제네랄 은행의 글렌 맥과이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AFP통신에 “몇 달 안에 중국이 디플레이션에 진입할 것이라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수명 다한 성장동력”=해외 경제 전문가들은 ‘오늘의 아시아’를 만든 수출 중심 전략이 역설적으로 이들 국가의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아시아의 경우 전체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7%에 이른다. 외환위기가 강타했던 10년 전(37%)보다 높다. 반면 내수 기반인 개인소비 비중은 1980년대 65% 수준에서 40% 중반까지 줄었다. 각국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늘리기 위해 수출 전략을 강화하는 동시에 저축을 유도하는 정책을 쓴 결과다.
이런 구조 속에서 수출 감소는 경제에 직격탄이 됐다. 에너지, 원자재와 부품 수입도 함께 줄면서 경제규모는 더 쪼그라들고 있다.
미국과 유럽 시장을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모았던 중국과 인도 시장도 수요를 받쳐주지 못했다. 이 지역의 소비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구매력이 선진국의 30%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
경제전략연구소(ESI)의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 대표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수출 중심의 성장 모델은 이제 효용이 끝났다”며 “아시아는 소비 진작에서 새로운 동력을 찾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아시아 경제를 집중 진단한 기사에서 “아시아 각국 정부는 국민이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고 현재 소비를 늘릴 수 있도록 자녀 교육비나 건강보험 등의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