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무전유죄’ 판결 시끌

  • 입력 2009년 2월 28일 03시 09분


“31년 근무 계산원 1.3유로 횡령 해고는 정당”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독일에서 한 슈퍼마켓 계산원이 1.3유로(약 2500원)를 횡령한 혐의로 해고됐다. 그 후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이 잇따라 나오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쟁이 뜨겁다.

사건의 발단은 슈퍼마켓 체인 카이저가 1.3유로의 빈 병 보증금 전표를 훔친 혐의로 약 1년 전 계산원 바르바라 에메 씨(50)를 해고한 것.

세 아이의 엄마인 이 여성은 혐의를 부인하며 해고무효 소송을 냈으나 지난해 8월 1심에서 졌다. 24일 베를린 시 노동법원도 “회사는 돌이킬 수 없는 신뢰 위반을 초래한 직원을 해고할 권한이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자 사민당(SPD) 소속의 볼프강 티르제 독일 하원 부의장은 이날 베를리너차이퉁에서 법원의 판결을 ‘야만적’이라고 표현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파괴할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베를린의 유력 법률조직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발언을 문제 삼아 티르제 부의장의 사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에메 씨는 논란의 중심이 되면서 일약 국가적 화제로 부상했다.

독일 타블로이드판 일간 빌트는 법원 판결 전에도 31년간 계산원으로 근무한 에메 씨의 사진을 1면에 배치하고 카이저의 해고 조치를 강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실은 바 있다.

기사의 논조는 “금융계의 살찐 고양이들은 세계 금융시장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는데 평범한 슈퍼마켓 계산원은 푼돈으로 직장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24일 공판 때는 에메 씨의 지지자들이 법원으로 몰려와 휴정 시간 동안 에메 씨에게 앞 다퉈 악수를 청했고 노조, 좌파단체도 잇달아 그와의 연대감을 표시했다.

이에 시사주간 슈피겔은 에메 씨가 “독일 반(反)자본주의 운동의 영웅으로 떠올랐다”면서 “은행 구제를 위해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카이저 측은 에메 씨의 해고가 당연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토비아스 투흐렌스키 사장은 25일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베를린에만 500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데 그들이 매일 1.3유로를 횡령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라”고 강조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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