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체가 망하는 것보다 AIG 망하고 혹독한 2,3년 낫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3월 5일 02시 58분



억만장자 투자자 로저스 주장… 버냉키도 “날 가장 화나게 한 사건” 비난

“지난 18개월간 AIG보다 나를 더 화나게 한 건 없었다.”

3일 미 상원 재무위 청문회장에서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이례적으로 직설적인 표현을 써가며 분노를 표했다. 파생상품 장사에 몰두하다 거덜 날 위기에 처한 초대형 보험그룹 AIG(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를 놓고 의원도, 정부 책임자도 한숨만 내쉬었다. 하지만 결론은 ‘대마불사(大馬不死)’였다.

버냉키 의장은 “AIG는 보험업에서 일탈해 무책임한 베팅을 숱하게 하며 크고 안정적인 보험사에 붙어 있는 헤지펀드에 불과했다”며 “그런 회사에 막대한 국민 세금이 지원되는 상황이 어처구니없지만 달리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AIG나 주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금융위기 와중에 거대 금융회사의 파산은 금융시스템과 국제경제에 재앙이 된다는 것이었다. AIG에 300억 달러를 추가로 제공하기로 한 백악관의 2일 결정을 옹호하는 논리였다. 이번 구제금융으로 AIG는 지난해 9월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총 1800억 달러를 받게 된다.

1919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미국인 사업가가 창업한 AIG는 130개국에 진출한 세계 최대 보험사로 지난해 초만 해도 포브스 선정 글로벌 기업 18위에 기록됐다. 그러나 지난해 4분기 미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인 617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고 3일 현재 주가는 0.43달러에 불과하다.

AIG의 천문학적 손실은 ‘신용부도스와프(CDS)’ 거래 등에서 주로 발생했다. CDS는 신용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손실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보전해주는 신용파생상품이다. AIG는 1990년대 후반부터 자회사들을 통해 2조 달러가량을 팔았다. 특히 유럽의 많은 은행이 CDS를 구입해 AIG에 물려 있다.

미국 내 보험계약 건수는 3억7500만 건에 이른다. 특히 은퇴자금을 이 회사에 맡겨둔 수백만 명의 시민은 ‘볼모’ 같은 존재다.

이날 청문회에선 “정부가 AIG를 인수해 우량 부문을 매각하고 나머지는 청산하자”(공화당 린지 그레이엄 의원)는 제안도 나왔다. 버냉키 의장은 “필요할 경우 AIG같은 다국적 복합 금융그룹을 해체할 수 있는 틀을 의회가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답했다.

억만장자 투자자 짐 로저스도 3일 AIG나 다른 부실 금융회사를 정부 지원으로 살리면 미국 경제가 파멸할 위험이 있으므로 AIG를 파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미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전체가 망하는 것보다는 AIG가 망하고 혹독한 2, 3년을 보내는 것이 낫다”면서 “부실 은행을 망하게 두지 않으면 자금이 바닥날 위험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시작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중소기업과 소비자들에게 최대 1조 달러까지 대출을 해줄 수 있는 신규대출 창구를 25일부터 개설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2008년 4분기의 경기지표가 25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며 “솔직히 말해 올해 1분기에 경기가 나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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