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와 영국 언론의 경제위기론 전쟁
(박제균 앵커) 최근 영국 언론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부정적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지난해 '9월 위기설'이 돌았을 때처럼 외신의 '한국 흠집내기'가 재연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김현수 앵커) 영국 언론에서 한국경제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를 경제부 차지완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차 기자. 먼저 최근 문제가 된 영국 언론의 보도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주시죠.
(차지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26일 한국을 17개 신흥국 가운데 남아프리카공화국, 헝가리에 이어 세 번째로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꼽았습니다. 이달 초에는 일간지인 파이낸셜타임스도 가세했습니다. '한국의 부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의 단기외채 문제가 여전하기 때문에 아직 위기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보도했습니다.
(박 앵커) 영국의 언론들이 이렇게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차) 한국의 외화 부채, 특히 단기외채 규모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단기외채는 만기가 1년 미만인 채무인데요.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한국의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채무 비율이 102%를 넘어설 것으로 봤습니다. 즉 가지고 있는 외화보다 갚아야 할 빚이 더 많다고 본 셈이죠. 은행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예금 대비 대출 비율이 130%에 이른다는 점도 문제를 삼았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다르지 않은데요. 한국의 단기외채 만기 연장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유독 영국 언론이 한국에 대해 비판적 보도를 하는 사례가 많은데요. 이는 과거 영국계 HSBC 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려다 포기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금융당국이 보인 행태에 불만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김 앵커) 정부는 이런 보도가 나올 때마다 사실이 아니라며 반박하고 있던데요. 반박의 근거는 무엇인가요.
(차)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이런 기사가 나올 때마다 해명자료를 냈습니다. 외환보유액이 단기외채를 상환하기에 충분하다는 게 해명의 요지입니다. 이코노미스트가 인용한 한국의 단기외채 비율은 한 금융회사의 추정치여서 사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위기론을 내세우는 배경도 단기외채 만기가 연장되지 않아서 모두 갚아야 한다는 비현실적 가정이라는 겁니다. 재정부 당국자는 이코노미스트에 "외환보유액 대비 한국의 단기외채는 75% 수준이고, 은행의 예대율도 118%"라고 반론을 싣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반박에 이코노미스트는 재반박을 하고, 정부는 또 다시 해명자료를 내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박 앵커) 한국의 경제상황에 대한 부정확한 보도가 이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닌데요.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걸까요.
(차) 지난해 '9월 위기설'이 확산될 때에도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외신들은 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을 거론해 국내 금융시장의 우려를 부추겼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부정확한 소문이 외신을 통해 소개되고, 이런 비관론이 다시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근거가 희박한 소문을 퍼뜨리는 세력에 1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정부의 외신 대응 태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주로 국내 언론을 대상으로 정책 홍보를 하다보니 한국에 주재하는 외신 기자들은 정부 당국자의 설명을 직접 들을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김 앵커) 비관론이 되풀이되는 것은 한국경제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요. 정부는 어떤 대책을 갖고 있나요.
(차)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외신 기자를 대상으로 홍보를 더욱 강화한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또 현안이 생길 때마다 사전, 사후 브리핑을 통해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정부 관계자가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본사를 방문해 한국의 외환보유액과 단기외채에 대한 의견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은 한국의 외환수급 사정을 개선해 부정확한 보도의 근거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입니다. 국내에 미국 달러화가 많이 유입될 수 있도록 경상수지 흑자 폭을 늘리는 것도 관건입니다. 금융전문가들은 흑자 폭이 크면 밖으로 나가려던 자본도 안 나가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올해 경상수지 흑자 예상액이 130억 달러에 이르는 만큼 추가 변수가 없다면 금융시장의 불안한 모습도 점점 누그러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 앵커) 차 기자,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