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등 국제사회 압력도 한몫… 정국 진정국면
반정부 시위대가 수도 이슬라마바드로 진격하는 등 파국으로 치닫던 파키스탄 소요사태가 파키스탄 정부의 백기 투항으로 진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16일 시위대가 요구해온 이프티카르 초드리 전 대법원장의 복직을 받아들이고 시위 도중 검거된 야당 인사와 변호사 등을 즉각 석방하겠다고 밝혔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유사프 라자 길라니 파키스탄 총리는 이날 오전 6시(현지 시간)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초드리 전 대법원장이 3월 21일 대법원장 자리에 복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슬라마바드와 4개 주에 내려졌던 시위 금지령도 해제됐다. 이에 따라 그동안 반정부 시위를 주도해왔던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도 시위 중단을 선언했다. 그는 이날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이 순간부터 파키스탄의 운명이 바뀔 것”이라며 “이것은 혁명의 서곡”이라고 승리를 선언했다.
2007년 당시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의 장기 집권용 개헌 추진에 반대하다 해임된 초드리 전 대법원장은 사법부 독립을 상징하는 인물.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은 지난해 샤리프 전 총리 진영과 연정을 출범시키면서 취임 30일 이내 그의 복직을 약속했지만 초드리 전 대법원장이 자신의 부패 전력을 들춰낼 것을 우려해 복직을 허용하지 않았다.
파키스탄 정부가 사실상 항복을 선언한 것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데다 잇따른 무리수로 민심이 돌아섰기 때문이다. 특히 15일 샤리프 전 총리에 대해 가택연금 조치를 취하면서 민심이 극도로 악화됐다. 샤리프 전 총리가 가택연금을 무시하고 라호르 시내로 행진할 때 경찰들은 사실상 이를 방치했고, 일부 경찰관은 시위대에 합류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군부 실세인 아슈파크 파르베즈 카야니 육군참모총장이 15일 자르다리 대통령을 만나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고 싶지 않지만, 언제까지 인내할 수는 없다”고 경고하면서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정부가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지난달 25일 샤리프 전 총리와 그의 동생 샤바즈 샤리프 전 라호르 주지사에 대한 공직선거 출마금지 조치 이후 악화일로를 걷던 파키스탄 정국은 차차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초드리 전 대법원장이 복직해 과거사 청산에 나설 경우 파키스탄 정국이 다시 소용돌이칠 것으로 예상된다. 자르다리 대통령과 암살당한 그의 아내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 부부는 무샤라프 전 대통령 시절 부패 혐의에 대해 사면을 받았지만, 초드리 전 대법원장이 이를 재조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