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올 초만 해도 이곳을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나라로 꼽아놓고 있었다. 올해초 한 방송사의 ‘세계기행’ 시리즈를 보면서 예멘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한 것이다. 프로그램은 ‘신비한 낙원’, ‘아라비아의 검은 보석’ 등의 화려한 제목을 달고 예멘의 수도 사나를 비롯해 타하마 등 주요 도시를 두루 소개했다.
그러나 예멘은 1990년대까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천국으로 불리며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의 조상들이 뿌리를 박고 살아온 곳이었다. 나라 전체가 국제 테러조직의 거점으로 테러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지난해만도 1월에 벨기에 여행단이 총격을 받아 2명이 숨졌고 8월엔 일본인 관광객 2명이 납치됐다 풀려났다. 9월에는 예멘 주재 미국대사관이 차량폭탄 공격을 당해 16명이 사망했다. 성인 1인당 총을 3정씩 보유해 언제 어느 때 사람이 죽어나갈지 모르는 곳이었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도 이달 초 신변 안전 보장이 안 되는 나라 8위로 예멘을 올렸다.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서 직접 가 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는 사람은 기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보듯 여행지에 대해 장밋빛 환상만 갖는 것은 문제가 있다.
프로그램 특성상 여행지의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힘든 방송프로그램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다만 위험지역을 소개할 때는 ‘정부가 여행 제한 국가로 선정한 곳이니 현지 치안정보를 숙지하고 여행을 결심하기 바란다’는 정도의 자막이라도 보내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블로거들이 올리는 인터넷 여행정보에도 안전정보는 취약하다.
이번 사고 여행사 홈페이지도 예멘을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사막이 있으며 시간이 멈춘 듯 예전의 흔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라’라고만 소개돼 있었다.
국내 여행 정보가 ‘환상’ ‘신비’적 이미지에만 치우쳐 있다는 것은 문제다. 이번 사건을 교훈삼아 정부, 미디어, 관광업계, 누리꾼들까지 여행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졌으면 한다.
주성하 국제부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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