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로빈 후드식 개혁’ 실패

  • 입력 2009년 3월 23일 02시 56분


총리 사임… 기업-부자에 세금 더 거둬 재정난 돌파 구상 물거품

페렌츠 주르차니 헝가리 총리(48)가 경기침체에 따른 퇴진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21일 사임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유럽에서 내각 수반이 사퇴하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이에 앞서 아이슬란드와 라트비아 총리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들 국가는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빛바랜 개혁=지난해 IMF에 250억 달러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주르차니 총리는 IMF와 유럽연합(EU)에서 자금을 추가로 조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그는 최근 돈줄이 막히자 서유럽 국가들에 동유럽 특별펀드를 조성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동유럽 펀드가 없으면 새로운 철의 장막이 세워질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하지만 서유럽 국가들도 헝가리의 호소에 눈길을 돌릴 여력이 없었다. 서유럽이 헝가리에 구원의 손길을 뻗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내부개혁의 지연이었다. IMF는 헝가리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 조건으로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줄이라고 요구했다.

주르차니 총리는 지난해 12월 초 공무원와 공기업 월급 삭감과 세제개혁에 착수했다. 경제위기에 살아남은 석유가스 공급회사와 고소득자들에게 세금을 추가로 부과한다는 것이 그의 마지막 카드였다. 서방에서는 그의 개혁을 ‘로빈 후드’ 법안이라고 불렀다. 그의 개혁이 부자에게서 재산을 뺏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줬다는 로빈 후드와 닮았기 때문. 하지만 이런 개혁이 추진되자 달러화가 유출돼 포린트화 가치는 올 들어 20% 폭락했으며 외환보유액 대비 6배에 이르는 대외채무는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를 높였다.

▽“시위대 반대하면 정책추진 포기”=말만 요란하고 많은 부작용을 낳은 포퓰리즘 정책도 주르차니 총리가 극복하지 못한 한계로 꼽힌다. 그는 재정적자의 주범이었던 철도노조 등의 월급을 깎겠다고 했으나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았으며 연금개혁도 손대지 못하고 물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헝가리에 거주하는 한 외국인은 “시위대가 반대하면 개혁 법안을 백지로 만든 것이 주르차니 총리의 정책”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최근 7.7%에서 8.4%로 치솟은 실업률 등으로 헝가리의 새 내각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재정지출을 줄일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많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