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제대로해야 금융위기 벗어나”

  • 입력 2009년 4월 4일 02시 55분


2일 도쿄 롯폰기힐스의 사무실에서 만난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교수는 “최근 일본 경제의 침체는 개혁의 부작용이 아니고 개혁을 멈췄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2일 도쿄 롯폰기힐스의 사무실에서 만난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교수는 “최근 일본 경제의 침체는 개혁의 부작용이 아니고 개혁을 멈췄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한국은 中企키워 기초체력 다져야”

■ ‘고이즈미 구조개혁 사령탑’ 다케나카 헤이조

글로벌 금융위기에 처한 주요국은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일본에서는 2001년부터 2006년에 걸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개혁의 공과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그중 ‘고이즈미 구조개혁의 사령탑’이라 불렸던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게이오(慶應)대 교수에게 공격이 집중되고 있다. 2일 만난 그는 “개혁을 제대로 해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00년에 한 번’ 올 정도로 심각하다는 이번 금융위기는 당초 미국발(發)이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가 타격을 받고 있다.

“100년에 한 번이란 말이 과장돼 면피용으로 쓰인다는 인상이 짙다.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국제통화기금(IMF) 예측으로 ―2.6%다. 대공황기인 1932년 미국의 성장률은 ―13%였다. 지금 미국의 실업률은 8.1%지만 1933년에는 25%대였다. 물론 지금부터 정책대응을 잘못하면 큰일이 벌어질 수 있다. ‘미국 탓’이라는 말도 그렇다. 그럼 왜 미국보다 유럽과 일본의 주가 하락폭이 더 클까. 미국에서 주택버블이 붕괴했다면 유럽은 주택버블에 유로버블, 자원국에는 자원버블이 있었다. 일본도 엔저버블이 있었다. 각지에서 생겨난 버블이 미국의 주택버블 붕괴를 계기로 터진 거다. 따라서 해결책도 각 지역이 독자적으로 찾아야 한다.”

―일본 경제가 이토록 침체된 이유는….

“개혁을 멈췄기 때문이다. 일본경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영향으로 세계가 위기에 처하기 전부터 이미 가라앉기 시작했다. 소비나 투자는 자신의 소득이 미래에 몇%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성장률에 기초해 움직이는데, 개혁이 둔화됨으로써 성장의 선순환이 멈췄다. 극단적인 반대 경우로 2005년을 들 수 있다. 우정민영화 선거에서 국민은 ‘개혁해 달라’며 정권에 표를 던졌고 그 기세에 힘입어 우리는 정부은행을 완전 민영화했다. 그해 주가는 42% 올랐다. 경기는 개혁의 성과가 아닌 개혁에 대한 기대감에 힘입어 활성화한다. 성장하려면 필요한 개혁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

―최근 고이즈미 전 총리나 다케나카 교수에 대한 성토가 많다. ‘구조개혁의 전도사’로 불리던 나카타니 이와오(中谷巖) 전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고이즈미 구조개혁이 빈부격차 등 부작용을 가져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책과 사상은 다르다. 정책은 개별적,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다. 그걸 신자유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이념형 꼬리표를 붙여 속이면 안 된다. 그런 잘못된 논의를 하고 있는 곳은 일본뿐이다. 글로벌 자본주의에 수정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격차는 확대되고 언제 어디서나 버블이 생긴다. 그러나 글로벌화는 ‘선택’이 아니고 ‘팩트’다. 어디를 고치고 어디를 발전시킬 것인지 시행착오를 해나갈 수밖에 없다. 나는 정책 전문가다. 정작 고이즈미 개혁이 신자유주의였던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불량채권 처리와 금융규제 강화, 공공사업 축소가 신자유주의인가.”

―제조업 파견 허용 등 노동시장의 규제완화가 격차를 확대시켰다는 지적은….

“격차는 1990년대부터 서서히 확대돼 왔다. 세계화와 정보기술(IT) 혁명으로 프런티어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리스크가 높아진 사회에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현상이 나타난 거다. 고이즈미 5년간 격차 확대의 속도는 오히려 줄었다. 본래 일본의 격차는 경쟁의 결과가 아니고 제도가 왜곡된 데서 비롯됐다. 정규고용은 자를 수 없다는 30년 전의 판례 때문에 기업들이 비정규고용을 늘렸다.”

―이후 구조개혁이 멈춘 것은 후임 정권의 리더십 때문인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의 공통점은 ‘개혁’의 슬로건은 내걸었으되 실현을 위한 어젠다를 내놓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젠다를 내걸면 반드시 충돌이 생기는데 싸우려는 각오가 없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는 명시적으로 고이즈미 개혁과 다른 것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요즘 일본은 정치의 불투명성이 심해 경제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를 잘 이끌 정치의 모양새는….

“말 그대로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권교체가 논해지지만 현실에서는 자민당도 민주당도 개혁하고 싶은 사람과 아닌 사람이 뒤섞여 있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정계개편을 통해 개혁세력끼리 힘을 합치는 것이다. 다음 선거부터 2, 3회 선거를 거치면서 정착될 것이라고 본다.”

―일본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미래 성장산업으로 환경기술, 사회복지 등을 내거는데….

“대찬성이지만 방법이 문제다. 일본 정부는 이미 신산업 창설을 위해 국내총생산(GDP) 대비로 미국의 두 배 돈을 쓰고 있지만 성과는 별반 없었다. 예산을 쥔 관료기구가 이를 산하 재단법인에 보내기 때문이다. ‘낙하산의 온상’이라는 그 법인들 말이다. 돈 쓰는 법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시장화 테스트를 통해 정부보다 잘할 수 있는 민간에 맡기는 방식이 낫다. 나는 일본은 장래에 물건과 지식, 자본의 게이트웨이 국가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보는데, 그러려면 세제개혁도 필요하다. 일본의 법인세는 너무 높다.”

―경제모델을 경쟁일변도에서 탈성장형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들린다.

“국민 모두가 소득이 늘지 않아도 되니 모두 평등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러나 국민은 경기를 좋게 해달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도 타격이 심하다.

“한국은 금융위기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의 하나로 알고 있다. 평소 나는 한국 경제는 현대적인 부분과 근대화가 뒤처진 부분을 함께 가진 이중구조라고 봐 왔다. 이 왜곡을 고치는 것이 급선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키워 산업기반의 기초체력을 붙여야 한다고 본다. 한국은 엄혹한 상황임이 분명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강한 한국 경제를 만들겠다’는 방향성은 올바르다고 본다. 한국에서 이뤄지는 정책 논의를 보면 일본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다케나카 헤이조는 누구

1951년생. 히토쓰바시(一橋)대 졸업.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출범과 더불어 학자에서 경제재정상으로 발탁됐다. 이후 고이즈미 정권 5년 반 동안 금융상, 우정민영화담당상, 총무상 등 요직을 역임하며 고이즈미 구조개혁을 진두지휘해 ‘구조개혁의 사령탑’으로 불렸다. 2004년 참의원 의원이 됐으나 2006년 9월 고이즈미 총리의 퇴임과 더불어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학자로 돌아갔다. 현재 게이오대 교수 및 일본경제연구센터 특별고문을 맡고 있다. 저서로 ‘싸우는 경제학’ ‘구조개혁의 진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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