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이익 줄어도 보수 올려
‘불합리하고 과도한 보수를 정부 구제금융 대상인 회사 임원이 받지 못하도록 규제할 수 있다.’ 미국 하원은 이달 초 재무부에 이런 권한을 주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실적에 따른 보수 법안(Pay for Performance Act 2009)’이라고 불리는 이 법안은 논란이 계속돼 온 최고경영자(CEO)의 보수에 대해 의회가 본격적인 대응에 나선 신호탄이다.
경제위기로 기업실적이 악화되면서 글로벌 기업 CEO의 지난해 연봉도 하향세로 돌아서는 추세를 보인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5일 주요 기업의 지난해 CEO 연봉을 분석한 결과 “임원들의 연봉과 실적에는 여전히 큰 괴리가 존재한다”고 전했다.
▽“일 못해도 보수는 두둑”=미국의 기업 보수 조사업체인 이퀄라이어가 최근 198개 상장기업 CEO 2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연봉을 조사한 결과 평균 금액은 1080만 달러로 2007년에 비해 5.1% 줄었다. 정보기술(IT) 분야의 거품이 꺼지던 2001∼2002년 이후 7년 만의 하락세다. 델라웨어대 찰스 엘슨 교수는 “임원 연봉은 기업 가치와 주주 이익에 연동돼 책정돼야 한다”며 “CEO 연봉의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CEO 실적과 보수의 상관관계를 찾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월트디즈니의 로버트 아이거, 보잉의 제임스 맥너니, 3M의 조지 버클리 CEO 등은 지난해 회사 이익이 줄었는데도 전년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았다.
경제위기의 시발점이 된 금융업계 CEO의 연봉도 여전히 높은 수준. 씨티그룹의 비크람 판디트 회장은 보너스를 한 푼도 받지 못했지만 기본 연봉만 95만8000달러, 보유 주식과 스톡옵션 가치는 모두 3820만 달러에 이른다. 연금 지급, 보험 같은 각종 특혜를 감안하면 연봉 규모는 더 늘어난다.
▽끊이지 않는 적정 연봉 논란=CEO 연봉의 적정성 논란은 금액산정 기준과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져 왔다. 투자자들이 이에 관여하거나 의견을 낼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도 계속됐다. 컨설팅업체인 ‘리스크 매트릭스’에 따르면 투자자들이 보수 산정에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결의안은 지금까지 100건 이상 제출된 상태. 미 의회도 상장기업 보수 산정 시 주주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일부 회사는 이를 시범 실시하고 있다. 거액의 연봉을 챙겨가는 CEO보다 그 연봉을 책정해 통과시킨 이사회의 결정을 문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사회가 CEO를 감싸거나 이사진의 연봉을 포함해 임원 보수를 안일하게 책정하고 있다는 것. 워싱턴정책연구소의 새러 앤더슨 연구원은 “이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져야 할 책임만큼 관리, 감독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