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에게 창의력을 묻다]美 로저 콘버그 교수

  • 입력 2009년 4월 11일 02시 56분


“순수 기초과학 지원 늘리면 노벨상은 저절로 따라올 것”

《“단순 설명이나 암기가 아닌 완벽한 이해를 위한 실험 위주 수업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노벨상 사상 6번째로 아버지에 이어 노벨상을 받은 미국 스탠퍼드대 로저 콘버그 교수(62)는 건국대 석학교수이기도 하다. 그는 2007년 노벨상 수상자로는 처음으로 국내 대학에 석학교수로 초빙됐다. 노벨상이 그의 ‘꿈’이 된 것은 12세 때였다. 당시 아버지 아서 콘버그 박사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것을 지켜본 그는 노벨상 도전을 마음속 깊이 새겨 넣었다. 그로부터 47년이 흐른 2006년. 그는 세포 내 유전자(DNA)에서 유전정보전달물질(RNA)로 유전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을 규명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학계는 그의 연구를 의학 분야에 적용하면 암 퇴치와 줄기세포 연구에 획기적인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콘버그 교수는 2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결과적으로 실패한 연구도 이후 연구에 밑거름이 된다”며 “여유를 가지고 순수 과학 연구에 매진해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제대로 이해해야 진짜 지식, 암기 아닌 실험위주 수업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어려서부터 혼자힘으로 결정 내리는 경험 중요

자연의 진실 찾아낼때 가장 큰 만족감 얻어

화학은 인생 걸만한 학문

노력한뒤 실패해도 연구에 큰 자양분 돼”

―노벨상 수상자인 아버지 아래서 남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 같다. 부모님이 당신의 인생에 끼친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

“노벨상 수상자인 아버지 때문에 똑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모님은 다른 부모님들과 큰 차이 없이 나를 키우셨다. 무엇을 하든 내가 좋아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을 격려해 주셨다. 그래서인지 내 어린 시절은 이상할 정도로 평범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스포츠와 음악에 관심이 많았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친구들과 함께 공부와 관계없는 여러 일을 하며 보냈다. 공부나 수업에 관한 특별한 부담 없이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렇다면 학창 시절 선생님이나 교수님은 어땠나.

“나는 공립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고, 그 학교들은 어떤 면에서도 전혀 특별할 것 없는 학교였다. 그러나 그 공립학교의 선생님들은 대부분 매우 열정적이고 헌신적이었다.

내가 과학을 선택하고 연구하게 되기까지는 그때의 선생님들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중에서도 팰러앨토 고등학교의 화학 선생님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이름이 엥겔케였는데, 그 선생님은 100% 실험을 통해 모든 교과서의 화학법칙을 가르치는 수업을 진행하셨다.

그 수업의 핵심은 완벽한 이해에 있었다. 외워야 하는 것도 없었고, 지식의 세부내용을 얼마나 잘 설명하고 적어낼 수 있느냐는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충분히 이해하는 데 100% 초점이 맞춰진 수업이었다. 그 화학 수업이 내 인생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나는 정말 문자 그대로 화학이라는 학문에 완전히 매료됐다. 그 교육과정과 경험은 내 인생 전체 행로에 영향을 미쳤고, 내 인생의 많은 부분에 큰 도움을 줬다.”

―그럼 고등학교 때 이미 화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처음 하버드대에 입학할 때는 영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당시에는 문학, 법학, 수학까지 거의 모든 과목에서 그 과목 나름의 매력을 느꼈다.

그런데 하버드대에서 소수정예로 개설된 2년 과정의 화학 강좌가 전공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과목을 가르친 교수 중 3명이 나중에 노벨상을 탔다. 로우스 페이서 교수가 맡은 유기화학 과목도 전공 교체에 영향을 줬다. 이들 과목을 통해 화학이 세상의 정해진 엄격한 규칙과 그 바탕을 이루는 숨은 진리를 탐구하는, 인생을 걸 만한 훌륭한 학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노벨상 수상이라는 꿈을 실현할 것으로 확신했는지 궁금하다.

“모든 과학자는 노벨상을 알고 있고, 또 수상 가능성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며 그것이 연구의 목적이 돼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고 과학 전체 지식 발전에 공헌하는 것이다.

명성을 얻는 것은 과학에서 우수한 성과를 내는 것과 차이가 있으며, 명성만 좇다가는 성과를 낼 가능성을 놓칠 수도 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연구를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고 계속 노력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이며, 이후의 문제는 남들이 판단할 일이다.”

―노벨상을 받은 뒤 연구나 일상생활에서 달라진 것이 있었나.

“노벨상을 포함해 그 어떤 상도 내가 과학 자체에서 얻는 만족과 비교할 수는 없다. 커다란 과학적 발견,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리는 것, 못 풀 것처럼 보이는 문제와 오래 씨름하는 것, 이때 내가 느끼는 설렘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노벨상을 받음으로써 내 노력이 인정받았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명성이 따라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계속 연구하는 데 어떤 의미에서 방해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나는 연구 출발선에 서 있다고 믿으며, 단순히 몇 년 내에 해결되지 못하는 많은 중요한 문제를 실험실 동료들과 함께 풀어나가는 데 더 큰 의의와 보람을 느끼고 있다.”

―한국은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또 이공계를 선택한 학생들도 의대로만 몰리고 있다. 화학자로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젊은 사람들은 자연의 세계를 탐구하고 감춰진 진실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큰 만족감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과학은 개인적으로 멋진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적 발견은 영원하고 보편적이며 한번 발견된 것은 영원하다.

반대로 나머지 모든 것은 삶 자체가 그렇듯 한시적이라고 생각한다. 또 정치나 비즈니스, 예술은 사람들 개개인의 생각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약간 동떨어진 얘기가 될 수 있지만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많은 지식을 주입하기보다는 각 과목의 가치를 학생들이 진정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흥미를 가지게 하는 데 그 의의를 두어야 한다.”

―미국을 포함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줄기세포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줄기세포 연구는 생물의학 연구의 중요한 영역 중 하나일 뿐이다. 한 분야에만 편중된 관심은 개인적으로 좋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다른 많은 분야도 함께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이공계 분야에서 노벨상을 타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로서 한국 정부와 학자들에게 조언해 달라.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 실용적인 가치에만 목표를 두는 연구가 아닌 단지 새로운 지식 탐구를 위한 기초 연구에 큰 투자를 해야 한다. 그러면 노벨상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이윤 추구를 일차적인 목표로 하는 회사처럼 응용과학에만 매달리는 방법으로는 노벨상에 이르는 길이 멀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한국 사람과 전통에 커다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 과학자들이 세계적인 연구 실력을 갖췄고 명성도 자자하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순수한 연구 분야를 더욱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한국 정부 역시 너무 빠르고 쉬운 문제 해결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실패한 노력이라도 이후 연구에서는 모두 중요한 자양분으로 쓰인다.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식이다. 그것은 자연을 열심히 탐구할 때만 발견할 수 있다. 강요하거나 닦달해서 얻어질 수는 없다. 기초적인 연구에 몰두해야 한다. 물질적 이득보다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진실 탐구에 중점을 두어야만 한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또 연구의 최종 목표점은 어디까지인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내와 아이들이다. 그 다음이 연구다. 이 가치관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하고 싶은 연구 목표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려운 문제를 풀고 화학 및 과학 분야에서 새로운 이론을 발견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자녀들이 어떻게 성장해 어떠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가.

“자기가 만족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충고는 하고 싶지 않다. 그들 스스로 자기 길을 찾는 게 진짜 중요하며, 작은 부분이라도 어려서부터 혼자 힘으로 결정을 내리는 경험을 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연구는 만족하는지 궁금하다.

“임용 첫해부터 농촌진흥청 바이오그린21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2년여 동안 이미 많은 연구 성과를 냈다. 현재 진행 중인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사업을 통해서는 세포 내의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대형 단백질 복합체의 삼차원 구조 결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건국대는 글로벌 랩(global lab)을 통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현재 스탠퍼드대에서 이뤄지는 많은 일이 건국대에서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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