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어민들, 해적 돌변 왜?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4월 20일 02시 57분



■ 타임 ‘뉴스의 이면’ 조명

내전후 해안가 무법천지

외국서 해양자원 빼가자

자칭 경비대 만들어‘범죄’


누더기를 걸치고 마약을 씹으며 배 위를 누비는 교활한 바다의 무법자들.

최근 잇달아 납치 사건을 일으킨 소말리아의 해적은 영화 ‘워터월드’에 나오는 악당의 아프리카 버전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소말리아 해적 중에는 평범하게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 출신도 적지 않다. 가난한 어민들이 해적으로 변신한 이유는 무엇일까. 시사주간지 타임 최신호는 “이들을 해적으로 내몬 데에는 해외 선진국 책임도 있다”고 지적했다.

1991년 내전으로 정부 공권력이 무너진 후 아프리카 대륙 최장 길이(3330km)를 자랑해온 소말리아의 해안은 무법천지로 변했다. 2050년이면 해양자원이 바닥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다른 해양지역과 달리 소말리아 앞바다에는 참치와 정어리, 고등어, 바닷가재 같은 해산물이 풍부했다. 하지만 해군의 감시가 사라진 이곳에서 외국 원양어선들은 허가도 받지 않고 각종 해양자원을 빼내갔다.

실제로 소말리아는 영해에서 매년 3억 달러에 이르는 해산물을 도둑맞고 있다(2006년 유엔 보고서). 손으로 물고기를 잡던 영세 어민들은 첨단 장비에 무기까지 장착한 외국 원양어선 때문에 번번이 생업에 지장을 받았다. 영국 스코틀랜드대 피터 레흐 교수는 “어민들이 외국의 저인망 어선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려 한 것이 1990년대 해적의 시발점”이라고 말한다. 해적들이 ‘소말리아 해안을 지키는 자발적 해안경비대’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더욱이 선진국들은 방사능 물질과 유독성 화학 폐기물을 비롯한 각종 쓰레기를 이 지역에 쏟아 부었다. 유럽에서 폐기물 처리에 t당 250달러가 드는 반면 이 지역에 버리면 2.5달러에 해치울 수 있기 때문. 환경 전문가들은 소말리아 정부가 외국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이를 눈감아 주고 있다고 의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불법 폐기물 처리에 대한 감시나 규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불법 행위를 하다 납치된 선박들이 문제를 덮으려 순순히 거액의 몸값 요구에 응한 것도 해적 양산에 일조했다.

어렵지 않은 ‘한탕주의’가 활개치면서 소말리아의 해적들은 이제 18척의 화물선과 300여 명의 인질을 잡고 있는 국제범죄 집단이 됐다. 산발적으로 이뤄지는 소수의 범죄를 넘어 점점 조직화 기업화하는 추세다. 이들의 자금 이동과 관리를 도와주는 전문 금융업자들까지 해적 범죄에 가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외국 대형어선)이 우리 바닷가재를 훔쳤다”는 어부 출신 해적의 외침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구차한 변명이 돼버렸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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