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범석]중국에 숙이고 한국엔 뻣뻣한 구글

  • 입력 2009년 4월 24일 03시 02분


“오늘처럼 이렇게 ‘현지화’를 외친 날도 없었습니다. 앞으로 한국 사용자들을 위한 서비스를 많이 개발할 생각입니다.” 22일 오전 구글코리아 이원진 대표가 간담회를 자청해 서울 강남구 역삼동 본사로 기자들을 불렀다. 1분기(1∼3월) 실적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선보일 구글코리아의 한국 현지화 서비스에 대해서도 소개하겠다는 설명이었다. 간담회장에서 이 대표가 펼쳐 보인 청사진은 “현지화를 통해 국내 포털업계에서 검색 부문 랭킹 3위 안에 들겠다”는 것이었다.

이 대표의 짤막한 설명이 끝나자 질의응답이 시작됐다. 이미 예상된 일이었지만 보도진이 집중적으로 던진 질문은 구글이 운영하는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대한 정부의 제한적 본인 확인제(낮은 단계의 실명제) 요청을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였다.

이 대표의 대답은 “노(No)”였다. 이 대표는 그 이유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앞세웠다. 그가 조금 전까지 목청 높여 강조하던 현지화와는 정반대 개념이 정당화 논리로 등장한 것이다. 그는 “한국 안에는 구글의 서버가 1대도 없다”, “구글의 e메일 서비스인 ‘G메일’을 비롯한 대부분의 서비스는 현지화 서비스가 아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대표는 또 구글은 “한국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는 동영상과 댓글을 올릴 수 없도록 차단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구글이 법을 어긴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편법 성격이 짙다는 게 국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에서도 해외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에 들어가면 얼마든지 한글로 댓글과 동영상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 측의 이날 태도는 3년 전과는 큰 대조를 보인다. 구글이 중국 진출을 선언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중국 정부는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티베트’ ‘민주주의’ 등을 금지어로 막았고 구글도 예외 없이 검열의 대상이었다. 이에 대해 구글의 에릭 슈미트 최고경영자(CEO)는 “이제 막 진출하려는 기업이 그 나라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건 옳지 않다”며 중국 현지법을 존중했다.

한국과 중국에 대해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이 대표는 “한국과 중국은 다르다”는 말로 맞받았다. 그는 “인구가 10억 명 이상인 중국은 사업 계획을 길게 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구글 측이 한국시장은 짧게 봐도 좋은 만만한 시장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드는 기자회견이었다.

김범석 산업부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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