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들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히틀러와의 단절’을 소망했다. 이는 피해 당사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유대인 말살이라는 과거의 유령과 단절하고 싶어 한다. 박해를 받으며 타향에서 떠돌던 삶을 기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나는 미국유대인위원회 중동지부 담당국장 에란 러만 씨가 최근 보내온 글을 읽고 이스라엘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을 생각했다. 러만 씨는 17세인 자신의 딸이 이란의 핵 개발 소식만 나오면 “내가 25세까지라도 살 수 있도록 아빠는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한다고 썼다. 러만 씨는 이스라엘이 ‘적대적 환경 속에서의 생존’이라는 과제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이 말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다.
우선 이스라엘 10대들이 테러 공포와 지속적인 피해의식, 유대인 대학살의 두려움에 얼마나 더 오래 사로잡혀 있어야 하는가다. 비록 이스라엘 정부가 이런 것들로부터 국민을 해방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말이다. 이스라엘은 미국 메릴랜드 주와 비슷한 작은 나라이지만 주변은 온통 적대적 환경뿐이다. 그러니 취약할 수밖에 없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출간한 저서에서 “이스라엘은 어떠한 잠재적 적보다 앞서는 최신식 군사력과 잘 훈련된 병력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공할 만한 핵무기도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이집트와 요르단 사이에서 평화를 유지하고 미국으로부터 안보를 보장받고 있다. 또 가자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지구 팔레스타인인 400만 명을 봉쇄해 이 지역을 무기력한 섬으로 고립시켰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스라엘의 적인 헤즈볼라와 하마스는 최근 전쟁에서 궤멸을 피한 것만으로도 승리를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절대 전쟁은 벌이지 않을 것이다. 이란은 페르시아 시절부터 30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한 번도 어리석은 군국주의적 망동으로 자멸을 재촉한 적이 없다. 말로는 온갖 협박을 늘어놓더라도 말이다. 러만 씨도 분명히 이런 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따라서 그의 딸도 안심했을 것이다.
이란을 제외하더라도 이스라엘 앞길에는 또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저명한 중동학자인 게리 식 씨는 “이스라엘에 가장 큰 위협은 이스라엘 바로 자신이다”고 말했다. 그 말의 함축적 의미는 이스라엘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의 23%에 해당하는 서안지구를 점령하고 있다. 에후드 바라크 현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1999년 이렇게 말했다. “이 지역을 통합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반유대주의 국가 또는 비민주주의 국가의 탄생으로 이어질 것이다. 다시 말하면 팔레스타인 주민이 투표에 참여한다면 2개 국가가 만들어지게 되고, 투표권을 주지 않는다면 인종차별 국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아랍 인구는 현재 540만 명으로 언젠가는 유대인 인구를 넘어설 것이다. 그래서 ‘2개 국가’ 해법은 이스라엘이 유대주의 국가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있다. 42년간 점령을 지속하고 정착촌을 건설하는 방식은 오히려 유대국가 건설의 토대를 갉아먹는 것이다.
로저 코헨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