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과 호흡하는 대통령 이미지 심어
보수와 진보 간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미국호(號) 선장이 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첫 100일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강조해 온 ‘변화’와 ‘통합’을 위한 시험 기간이었다. 20일 처음으로 소집된 오바마 내각은 워싱턴 정치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각료회의 멤버 21명 중 아시아와 히스패닉 등 소수민족 출신 9명, 여성 7명, 흑인 4명, 공화당 출신 2명 등 다채로운 인적 구성을 보여 줬다.
40대 초선 상원의원 출신이라는 ‘경험 부족’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100일이란 기간에 7870억 달러의 경기부양법 처리,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명령,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수 결정, 워싱턴 정가의 로비스트 근절방침 결정 등 주요 정책들을 거침없이 추진했다.
기존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파급력 강한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대통령은 주저없이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11차례 미국 전역을 돌며 대중과 직접 소통했던 ‘타운 홀 미팅’은 ‘오바마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대선 유세를 떠올리게 했다. 2월 10일 플로리다 연설 도중에는 집이 없어 자동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60대 흑인 여성의 볼에 입을 맞추며 등을 토닥여주는 훈훈한 장면도 연출했다. 미셸 여사와 레스토랑, 공연장, 농구장, 학부모 모임, 보건소 등에도 수시로 나타나 대중과 호흡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도 심었다.
첫 흑인 대통령 취임은 미국의 ‘근본 문제’인 인종 장벽도 허물어뜨릴 기세다. 27일 CBS는 뉴욕타임스와 실시한 공동여론조사 결과에서 “여론조사 사상 처음으로 흑인들이 인종문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59%의 흑인들이 현재 흑백인종 관계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답한 것이다. 1년 전 여론조사에서는 29%만이 긍정적 답변을 했다.
오바마식 개혁과 통합에 역풍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택적 낙태 허용, 줄기세포 연구 재개 등 이른바 ‘리버럴 어젠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수진영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CBS와 뉴욕타임스 여론조사 결과 종합지지율은 69%였지만 민주당 지지층(91%)에 비해 공화당 쪽은 31%만이 지지했다. 에너지, 건강보험, 교육 등 3대 개혁과제의 구체화 등 오바마 대통령을 기다리는 난제들도 산적해 있다. 역사의 평가는 지난 100일보다는 남은 임기 중 성과에 좌우될 것이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