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발 ‘돼지인플루엔자’가 가뜩이나 어려운 세계 경제를 더 곤란에 빠뜨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세계 경제를 비틀거리게 만든 미국발 주택금융 위기에 이어 ‘제2의 불황 바이러스’가 출현했다는 우려도 있다. 통상 마찰이나 외교 분쟁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각국이 돼지인플루엔자 유입을 막기 위해 무역이나 여행에 제한을 가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 경제적 피해 얼마나 될까
돼지인플루엔자 확산 소식이 전 세계에 타전된 27일부터 미국과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주가는 이틀째 하락했으며 석유와 구리 등 각종 원자재 가격도 하락했다. 전례에 비춰 보면 이는 이유 있는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의 충격에 빠졌던 2003년 도이체은행이 분석한 ‘전염병과 투자의 관계’ 보고서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전염병과 같은 ‘외부 충격’은 내성이 약해진 시장을 공격하는 ‘불황 바이러스’로 작용한다. 전문가들은 1960년대 후반 수만 명의 희생자를 냈던 홍콩 독감의 경우도 당시 약세를 면치 못하던 전 세계 주식시장을 강타해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고 분석한다.
돼지인플루엔자 파동이 세계 경제에 얼마나 충격을 줄지는 확산 범위와 지속 기간 등 피해 규모에 달려 있다. 세계은행이 2008년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심각한 인플루엔자로 전 세계에서 7100만 명 이상이 사망할 경우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은 4.8% 하락한다.
미국 의회예산처가 2006년 작성한 ‘잠재적 인플루엔자의 거시경제적 파급 및 정책 이슈’ 보고서는 2003년 사스 발발 당시 수준의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경우 미 GDP는 1% 안팎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1918년 스페인 독감과 같은 수위의 피해가 발생할 경우 미 GDP는 4.25∼5.5% 감소한다고 추산했다.
○ 외교적 분쟁 우려도
29일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국경 봉쇄나 여행제한 조치는 인플루엔자 차단에 효과적이지 않다’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져 향후 외교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일본은 돼지인플루엔자 환자와 사망자가 급격히 늘고 있는 멕시코에 대해 비자 발급 면제를 중지했다. 또 이 질병의 발생이 확인된 국가와 일본 간 항공기 운항을 나리타(成田) 등 4개 공항으로 제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돼지인플루엔자 감염 추정환자가 감염자로 최종 확인될 경우 한국인의 일본 입국 등도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자국 내 감염 환자가 급증하면서 자국산 육류 수입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나라가 늘자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무역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미국산 돼지고기나 살아 있는 돼지에 대해 금수 조치를 취한 국가는 한국 중국 러시아 등 9개국에 이른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