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걸고 가르치는 ‘아프간의 상록수’

  • 입력 2009년 5월 5일 23시 32분


뿌연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아프가니스탄 동부 '고다 마을'의 작은 학교. 부르카(눈만 내놓는 긴 옷)로 온 몸을 가린 소녀들이 낡은 플라스틱 샌들을 끌고 매일 이 곳으로 모여든다. 가는 데만 두 시간 넘게 걸리지만 개의치 않는다. 이곳은 여성 교육을 금지한 탈레반의 감시를 피해 글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이 학교는 28세 아프간 여성 사디카 바시리 살림 씨의 눈물과 땀으로 세운 곳이다. 그녀는 7년 전 36명의 여학생으로 시작해 현재 6개 학교에 2800명이 공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 주인공이다. 최근 뉴스위크 온라인 판은 아프간의 열악한 현실에 맞서 싸운 살림 씨의 고군분투를 소개했다.

살림 씨가 여학교 설립에 나선 것은 의사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이 좌절되면서부터. 파키스탄 난민촌에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해 대학까지 들어갔지만 탈레반이 학교를 폐쇄하는 바람에 한 학기 만에 학업을 중단했다. 그녀는 "나 같은 경우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저축한 돈을 모두 털어 2002년 뜻을 함께 한 다른 여성들과 함께 고다 마을의 버려진 이슬람 사원에서 소녀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살림 씨와 교사들은 탈레반의 끊임없는 감시와 위협에 시달렸다. 학부모들조차 "여자애들한테 무슨 교육이냐"고 했다. 2005년엔 학교로 사용돼온 텐트촌이 한밤중 누군가의 방화로 모두 불타버려 공부하는 것이 목숨을 위협하는 일까지 되어 버렸다. 살림 씨는 굴복하지 않았다. 우선 "아이들이 코란을 읽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신의 뜻"이라며 집집마다 부모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뙤약볕도 마다않고 노천교실에서 읽고 쓰는 것과 수학, 생물학, 역사를 가르쳤다. 학교는 지금 '오뤼지 학습 센터'라는 번듯한 이름을 가진 교육기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살림 씨는 "사회 변혁이라는 거창한 목표 때문이 아니라 내 스스로 절실히 느꼈던 배움의 필요성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상황은 갈수록 좋지 않다. 실권했던 탈레반이 최근 다시 득세하면서 교육 현실은 이전보다 더 힘겨워지고 있다. 아프간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한 해에만 458개 학교가 각종 폭력과 공격 위협 때문에 문을 닫았고, 40만 명의 학생이 교실을 잃었다. 33명이 살해당했고 염산 투척 사건 등으로 22명이 다쳤다. 이달 초엔 아프간 여성인권 운동가가 살해당하는 등 살림 씨의 신변에 대한 위협도 커졌다.

하지만 살림 씨는 "나보다도 내 학생들이 걱정 된다"며 "설사 내가 이 일을 중단한다 해도 나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전체 인구의 78%가 문맹인 아프간에서 교육이야말로 삶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 그녀의 신념이다. "교육만이 탈레반 같은 정권의 폭정에 맞설 수 있는 무기"라고도 했다.

살림 씨는 요즘 잠시 틈을 내 미국 매사추세츠의 마운트 홀요크 대학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과정을 밝고 있다. 올 방학기간에도 아프간 학교로 돌아갈 아이들을 가르칠 계획인 그녀는 자신의 공부가 다 끝나는 대로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 선진교육을 가르치고 싶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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