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탈레반과 전면전”… 50만 피란행렬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5월 9일 02시 56분



정부, 전투기 동원 소탕작전
“하루새 반군 143명 사살”

파키스탄의 서북쪽 변경인 스와트 주(州) 중심도시인 밍고라에 살던 하지 카림 씨(55·버스 운전사)는 6일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16km 떨어진 마구간에 짐을 풀었다. 스와트 지역에서 벌어지는 탈레반과 정부군의 참혹한 전쟁을 피해 친척 70여 명과 함께 피란길에 나선 것이다. 나흘째 계속되고 있는 정부군의 파상 공세에 피란을 떠난 주민들은 약 50만 명.
카림 씨는 지난달 탈레반 전사들이 마을에 처음 들이닥쳤을 때 그들은 ‘평화’와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위해 왔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탈레반 요원들은 트럭에서 경찰관을 끌어내려 참수하려고 했다. 주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막아서는 바람에 경찰관을 놓아주었지만 사람들을 공포와 의심으로 몰아넣기엔 충분했다. 이후 탈레반은 여학교를 포격하기도 했다. 희생자는 없었지만 메시지는 간단했다. 여성들은 ‘부르카를 써야 하고, 집 안에 갇혀 있어야 하며, 교육을 받아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카림 씨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들이 도대체 누구인가. 사람들의 목을 자르는 게 무슨 이슬람 율법인가 하면서 사람들이 엄청난 분노와 공포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유수프 라자 길라니 파키스탄 총리는 7일 TV 연설에서 “나라를 인질로 잡고 협박하는 테러세력을 제거하라고 군대에 명령했다”며 탈레반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했다. 올해 초 파키스탄 정부가 탈레반과의 평화협정을 맺고 ‘이슬람 율법통치’를 허용했던 때와 180도 달라진 자세다. 탈레반이 수도 인근까지 세력을 확장하자 미국이 핵무기를 가진 파키스탄이 탈레반에 의해 전복될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정부군은 스와트 지역에 7000명 이상의 탈레반이 은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1만 명의 군대와 전투기, 헬기 등을 동원해 소탕작전에 나섰다. 정부군은 지난 24시간 동안 143명의 탈레반 반군을 사살했다고 8일 밝혔다. 민간인 희생자도 속출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현지 전문가들과 주민들은 이번 탈레반 소탕작전은 미국의 군사 원조를 더 얻기 위한 파키스탄 정부의 쇼에 불과하며 역사적 경험으로 봤을 때 정부군은 곧 떠나고 탈레반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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