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빵 몇조각으로 연명
모기떼에 몸 성한데 없어
“아이들이 땡볕에서 끝이 안 보이는 긴 식량배급 줄에 몇 시간씩 서 있는 게 일과가 돼 버렸어요. 빵 몇 조각을 얻어 돌아오면 더위를 먹어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죠. 밤에는 모기떼에 뜯겨 온몸이 성한 데가 없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야위고 약해지는 애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집니다.”
파키스탄 초타 라호르 난민캠프에서 피란 생활을 하고 있는 카눔 잔 씨(23). 9남매의 어머니인 그는 요즘 더위와 굶주림에 지쳐 가는 자녀를 볼 때마다 “내가 낳은 애들의 얼굴이 맞나, 원래 우리 애들 얼굴이 어떻게 생겼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다”고 말했다. 과일나무가 가득한 고향집 마당에서 뛰놀던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엔 어느덧 두려움과 고통이 자리 잡았다.
파키스탄 서북부 농촌에서 살던 잔 씨는 파키스탄 정부군과 탈레반 무장세력 간 분쟁, 폭력사태가 격화되자 집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피란길에 올랐다. 가족은 언제 어디서 폭탄이 날아들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 수십 km를 걸어야 했다. 겨우 난민캠프에 다다른 뒤 작은 천막을 배정받아 온 식구가 함께 지내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는 국제구호기구 월드비전은 하루아침에 난민으로 전락한 잔 씨 가족과 난민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동아일보에 전해 왔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가 가족과 헤어져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다. 늙은 부모나 병든 자녀를 두고 온 죄책감, 그리움에 시달리는 난민도 적지 않다. 잔 씨와 함께 난민캠프에서 생활 중인 파잘 카림 씨(27)는 “백혈병에 걸린 여섯 살짜리 아들을 친척집에 떼어놓고 난민캠프에 왔다”고 말했다. 카림 씨가 눈물을 보였다. “아들이 숨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릅니다. 꼭 다시 품에 안아보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합니다.”
늘어나는 난민과 구호물자 부족으로 난민캠프 생활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아기들에게 먹일 분유나 환자에게 필요한 의약품이 크게 부족하다. 죽음의 공포 속에 난민들의 정신적 고통도 커지고 있다. 일부 어린이는 혼자 조용한 구석을 찾아 숨는 등 이상행동을 보인다. 난민들끼리 서로 믿지 못하고 사소한 일로 다툼을 벌이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은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지고 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물부족… 약부족…노약자 위급상황”
그는 “난민 대부분이 기후가 서늘한 파키스탄 서북부 스와트밸리의 산악지역 출신이라 더위를 이겨내는 데 애를 먹고 있다”며 “특히 물 부족이 심각해 어린이, 노인, 환자들이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그동안 기본적인 식료품, 의약품을 지원해 왔지만 구호물품은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트롱 회장은 “난민과 구호단체들은 한국 등 국제사회가 나서서 이들이 정상적 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월드비전 한국은 홈페이지(www.worldvision.or.kr)를 통해 파키스탄 난민 지원모금을 진행 중이다.
한편 국제인권단체 ‘국내난민 모니터링 센터’(IDMC)에 따르면 파키스탄의 경우처럼 내전이나 민족분쟁 등 폭력사태 때문에 고향을 떠난 국내난민(IDP)은 지난해 2600만 명 이상에 이른다. 그러나 국내난민은 국제난민에 비해 유엔 등 국제단체의 관심을 상대적으로 덜 받고 있어 상황이 더욱 열악하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스트롱 월드비전 파키스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