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혁명 도화선 ‘대학생 피격’ 범인은 동독 비밀경찰의 첩자

  • 입력 2009년 5월 24일 02시 54분


FAZ “독일현대사 다시 써야”

1960년대 독일 학생운동의 극좌화에 도화선이 됐던 한 대학생 피격 사건의 범인이 옛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첩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독일 언론이 22일 일제히 보도했다. 특히 이 사실을 가장 먼저 보도한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이것이 진실이라면 1967년부터의 독일의 역사는 다시 쓰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26세로 베를린자유대 학생이었던 베노 오네조르크는 1967년 6월 2일 서베를린에서 팔레비 이란 국왕 방문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했다가 서독 경찰관 카를하인츠 쿠라스(사진)의 총격으로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사망했다. 독일 학자들은 오네조르크의 죽음이 없었다면 학생운동권이 그렇게까지 과격화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당시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나는 오네조르크의 사망에 대해 전해들은 뒤 사회학 세미나 시간에 앞으로 학생들이 나치 치하의 유대인의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아도르노의 예측은 이후 학생운동이 그들에게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프랑크푸르트학파마저 거부할 정도로 과격했다는 점에서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울리케 마인호프라는 학생은 그해 가을 이 사건을 거론하며 적군파(RAF)의 결성을 선언했다. 이후 10여 년간 독일의 저명인사 등 30여 명을 살해하는 극렬 테러행위를 자행한 적군파는 경찰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이 사건을 테러행위 정당화의 근거로 내세웠다. 적군파의 테러행위는 아직도 독일 국민에게 큰 정신적 상처로 남아 지난해 ‘마인호프 콤플렉스’란 책은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최근 발견된 슈타지 문서에 따르면 쿠라스는 1955년부터 슈타지를 위해 일했다고 FAZ는 전했다. 그는 동베를린으로 가 동독 경찰로 일하고 싶어 했지만 슈타지는 그에게 서베를린 경찰로 남아 동독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슈타지는 서독 경찰 내의 스파이 색출을 담당하는 부서에서도 일했던 쿠라스가 전달하는 첩보에 크게 만족했다.

특히 슈타지는 쿠라스의 개인 파일에서 “어려운 임무도 완수할 준비가 돼 있으며 이에 필요한 용기와 무모함도 있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대학생 사살을 직접 지시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슈타지는 이 사건 후 “모든 기록을 폐기하고 당분간 활동을 중단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이에 대해 현재 81세인 쿠라스는 당시 슈타지의 개인파일을 보여주며 이를 확인하는 FAZ 기자에게 슈타지에 협력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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