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리 前총리 암살은 헤즈볼라 소행”

  • 입력 2009년 5월 25일 21시 59분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암살사건의 주범은 시리아가 아니라 레바논의 무장단체이자 정당인 헤즈볼라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최신호가 보도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7일 총선이 실시되는 레바논에서 정치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이 사건 조사와 재판을 맡고 있는 유엔 특별재판소의 내부문건에 따르면 사건이 벌어진 2005년 2월 14일 암살현장 주변의 휴대전화 통화기록 등을 분석한 결과 헤즈볼라 특수부대 소속 대원 20여 명이 암살에 개입했으며, 헤즈볼라 군사부문 사령관인 하지 살림(45)이 총지휘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이 잡지는 전했다. 유엔은 레바논 정부와의 협력 속에 올 3월부터 네덜란드에서 특별재판소를 운영하고 있다.

헤즈볼라의 최고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48)와 하리리 전 총리는 앙숙 관계였다. 이슬람 시아파인 나스랄라는 친(親)시리아-반(反)서방 성향이었고, 하리리 전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에 반시리아-친서방 정책을 폈다. 나스랄라는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하리리 전 총리를 '눈엣 가시'처럼 여겼다고 이 잡지는 설명했다.

하리리 전 총리 암살사건은 중동 일대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레바논은 사실상 시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시리아가 하리리 전 총리 암살의 배후라는 의혹이 확산되자 레바논 전역에서는 '백향목 혁명'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반 시리아 시위가 벌어졌고 미국은 시리아에 외교적 압력을 가했다. 결국 시리아는 같은 해 4월 레바논에 주둔 중이던 1만4000명의 군 병력을 철수시켰고, 이어 레바논에는 친서방 정부가 출범했다.

헤즈볼라는 2006년 이스라엘과 전쟁을 일으켜 승리한 뒤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헤즈볼라를 주축으로 한 야당연합이 승리할 경우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이란과 시리아의 레바논에 대한 영향력이 커지고, 반면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이라고 영국 더 타임스는 25일 분석했다. 조지프 바이든 미국 부총리가 22일 레바논을 방문하는 등 미국 정부도 이번 총선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하리리 전 총리 암살이 헤즈볼라의 소행으로 확인된다면 헤즈볼라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크게 떨어지고 총선에서 야권이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헤즈볼라는 24일 "슈피겔의 보도 내용은 모두 거짓이며 왜곡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불똥이 이스라엘로 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스라엘 일간 하아레츠는 25일 "하리리 전 총리의 암살 문제가 계속 부각된다면 헤즈볼라는 유권자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스라엘과 무력 충돌을 벌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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