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웬걸, 공사장 주변 도로는 웬만한 주택가보다 더 깨끗하고 소음도 심하지 않았다. 공사장을 둘러친 간이 벽 때문에 내부가 잘 보이진 않지만 트럭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걸로 봐선 공사 중인 게 분명한데 도무지 외견상으로는 공사장 티가 나지 않는다.
어느 날이었다. 근처를 지나는데 마침 막 열리고 있는 공사장 출입문 너머로 인상적인 광경이 들어왔다. 대형 트럭 양쪽에서 수도 호스를 든 인부들이 양쪽 바퀴와 차체에 묻은 흙먼지를 씻어내는 장면이었다. 샤워를 마친 트럭은 웬만한 승용차보다 더 깨끗한 모습으로 공사장을 나서는 것이었다. 흙이 덕지덕지 묻었거나 짐칸을 포장막으로 덮지 않은 트럭, 포장막이 너풀거리는 차량은 공사장에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었다. 한국에선 진흙에 가려 번호판마저 잘 보이지 않는 공사차량을 자주 봐온 터라 생소하기만 했다.
소음은 또 어떤가. 공사장 간이 벽엔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계기반 두 개가 내걸려 있다. 소음과 진동 측정기다. 며칠 전 봤더니 소음 60dB, 진동 38dB을 가리키고 있었다. 주민과 통행인의 불편을 헤아리는 마음 씀씀이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공사 중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란 상투적인 플래카드야 없은들 어떤가.
또 하나, 공사로 인해 중간에 길이 끊어져 임시로 마련해 놓은 20m 남짓한 통로가 또한 인상적이다. 통로의 양 끝은 차도와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위험해 보이지만 지금까지 작은 사고 하나 일어나지 않았다. 통로 끝부분에 다다르면 사람이든 자전거든 속도를 늦춰 S자로 돌아갈 수밖에 없도록 2개의 차단막을 엇갈리게 설치해 놨기 때문이다. 아무리 급해도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차도에 발을 내디딜 수 없는 구조다. 목마른 나그네에게 나뭇잎을 띄워 표주박을 건넸다던 옛이야기를 일본 공사장을 보면서 떠올릴 줄은 몰랐다. 낯선 길거리 사람들, 불특정 다수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다.
가족에게, 친지에게, 그리고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에게 정을 주고 배려하기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 앞으로도 볼 일이 없을 사람에게 마음을 베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배려가 아닐까. 누가 한국인의 특성에 대해 물으면 곧잘 이렇게 대답해 왔다. 정이 많다, 친절하다, 그리고 착하다고. 그러나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상대가 불특정 다수라면, 게다가 익명의 장막 뒤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지는 것 같다. 인터넷 뉴스 화면 아래로 시선을 내리기가 두려울 정도로 섬뜩한 댓글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일본에선 일상생활에서 낯선 사람의 배려와 친절을 만나는 일이 드물지 않다. 길을 물으면 가던 길을 되돌려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건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니다. 오랜 세월 쌓인 친절과 배려는 세계 속에 일본인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야박하리만치 에누리 없는 셈법으로 이윤을 취하면서도 넘치는 친절로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상술은 수준급이다. 이쯤 되면 불특정 다수에 대한 친절과 배려는 그 자체로 막강한 경쟁력이다.
윤종구 도쿄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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