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초고속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광둥(廣東) 성이 요즘 흉흉하다. 중국에서 손꼽는 부자이자 중국 최대 전자제품 유통업체인 궈메이(國美)그룹의 창업자 황광위(黃光裕) 전 궈메이그룹 회장의 주가조작 비리로 광둥 성 출신의 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낙마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언론은 광둥 성 선전(深(수,천)) 시 부시장 등 3명의 간부가 비리 혐의로 체포돼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9일 보도했다. 이에 앞서 6일에는 쉬쭝헝(許宗衡) 선전시장이 전격 체포됐다. 이들은 황 전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황 전 회장은 지난해 말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쉬 시장은 또 2011년 선전 시에서 열리는 유니버시아드대회를 앞두고 경기장 건설을 추진하면서 설계자를 임의로 교체한 혐의로 광둥 성 기율검사위원회의 내사를 받아왔다고 홍콩 언론이 전했다.
현재 이 사건으로 낙마한 고위 공직자는 부(副)성장급 이상만 5명이다. 지난해 10월 체포된 황쑹유(黃松有) 전 최고인민법원 부원장을 비롯해 올해 1월 정사오둥(鄭少東) 전 공안부 부장 조리, 4월 천사오지(陳紹基) 전 광둥 성 정치협상회의 주석, 5월 왕화위안(王華元) 전 저장(浙江) 성 기율검사위원회 서기와 쉬 시장이다. 이 가운데 천 전 정협 주석과 왕 전 서기는 한국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성장급 인사다. 또 다른 성장급 인사가 연루됐다는 소문도 있다.
이 밖에 광둥 성 정부의 국장급 관리 여러 명이 조사를 받고 구속됐다. 광둥 TV의 한 미녀 앵커는 천 전 정협 주석과 은밀히 관계를 맺어오다 이번에 들통이 났다.
이들은 대부분 광둥 성 출신이거나 광둥 성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광둥 성 출신인 정 전 공안부장 조리는 고향에서 일하다 승진해 몇 년 전 베이징으로 자리를 옮겼다. 왕 전 서기 역시 직전 근무지가 광둥 성이다. 황 전 최고인민법원 부원장은 황 전 회장과 같은 광둥 성 산터우(汕頭) 시 출신이다. 고향이 같은 이들은 뇌물을 받고 황 전 회장에게 편의를 제공하다 이번에 쇠고랑을 찼다.
선전 시 관가와 재계는 당정 지도부의 갑작스러운 경질에 최근의 경제회복 노력이 타격을 입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한 공무원은 “지역사회에 폭넓은 인맥을 구축해온 쉬 시장의 낙마 소식에 시민들이 놀라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중앙정부나 광둥 성 정부에 인맥이 없는 쉬 시장이 내부권력 투쟁에서 패배해 희생양이 됐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편 조사가 진행되면서 심리적 압박을 견디다 못한 자살 기도도 잇따르고 있다. 7일엔 쉬 시장이 자살을 기도했다고 홍콩 언론이 전했다. 지난달엔 정 전 공안부장 조리가 수감 도중 자살을 시도했다. 이에 앞서 4월 말엔 황 전 회장이 유치장에서 자살을 시도했으나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