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페스티벌 창안해 번영 구가
스트랫퍼드(Stratford)라는 도시가 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고향이다. 정식 명칭은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이다. 그런데 캐나다에도 스트랫퍼드라는 도시가 있다. 이 도시는 셰익스피어와 큰 관련이 없다. 다만 1832년 온타리오 주 서남부 지역에 셰익스피어 호텔이 세워졌는데, 이를 계기로 스트랫퍼드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뿐이다.
1886년 도시로 승격되면서 스트랫퍼드는 철도 여행객들의 환승지로, 또 기차에 문제가 생기면 수리를 하는 기차 정비 도시로 발전했다. 동시에 가구 산업 중심지가 됐다. 하지만 1930년대 대공황기에 심각한 파업이 벌어져 이 지역의 산업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더구나 캐나다 국영철도회사(CNR)가 기차 정비 관련 시설을 1953년 모두 철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철도 정비 산업마저 흔들렸다.
이때 스트랫퍼드 출신으로 잡지 ‘매클린’의 기자였던 톰 패터슨이 셰익스피어의 고향과 도시 이름이 같다는 점에 착안해 ‘셰익스피어 연극 페스티벌’을 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물론 대다수 주민은 허황된 꿈이라며 비웃었다. 그러나 시 당국이 그의 계획을 지지했고 일부 지역경제인도 지원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1952년 ‘스트랫퍼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이라는 법인이 설립됐고 이듬해인 1953년 첫 공연을 할 수 있었다.
법인을 설립하기는 했지만 이 연극에 필요한 배우와 관련자들을 무명의 소도시로 불러 모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톰 패터슨과 주변 인물들은 페스티벌을 성공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영국까지 가서 유명 배우들을 만나 공연을 해달라고 설득하고 호소했다. 이들의 열성에 감동해 당시 최고의 셰익스피어 배우로 꼽히던 알렉 기네스가 공연을 승낙했다.
초기에는 극장이 없어 텐트를 치고 공연을 했다. 스트랫퍼드는 1957년 ‘페스티벌 극장’을 세웠는데 텐트 공연 때의 초심을 영원히 잊지 말자는 뜻에서 텐트 모양으로 건물을 지었다.
오늘날 스트랫퍼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은 겨울을 제외하고 4월에서 11월까지 거의 7개월 동안 계속된다. 이제 이 도시 최초로 설립됐던 페스티벌 극장을 비롯해 에이번, 스튜디오, 톰 패터슨 등 4개 극장에서 공연이 진행된다. 2008년부터 야외 공연이 시작됐다.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을 기반으로 이 도시는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2006년 기준으로 스트랫퍼드의 실업률은 4.8%로 캐나다 전체 평균인 6%보다 훨씬 낮은 수준을 보였다. 관광 및 서비스 산업이 꾸준히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이 셰익스피어의 실제 유적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면, 캐나다의 스트랫퍼드는 무에서 유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가진 것이라고는 스트랫퍼드라는 이름뿐이었다. 그것도 셰익스피어와는 아무 상관없는 완벽한 ‘짝퉁 브랜드’였다. 하지만 스트랫퍼드는 도시 이름 하나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을 창조했다. 이제 캐나다 스트랫퍼드에서 만들어진 연극은 본고장인 영국 스트랫퍼드로 역수출되고 있다. 또 이 페스티벌은 세계 3대 영어 연극제로 발돋움했다. 스트랫퍼드는 페스티벌 개최에 만족하지 않고 최고의 문화 관광 도시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이 도시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최고의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요리 전문가 양성학교 ‘스트랫퍼드 셰프 스쿨’을 세웠다. 또 관광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공공 정원 및 개인 주택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는 운동을 시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다.
스트랫퍼드가 문화예술 도시로 자리 잡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도시의 경제 기반이 무너지고 있을 때 기업을 유치하거나 중앙 정부의 예산 지원을 요청하는 식의 판에 박힌 해결책을 찾기보다 통념을 깨는 창의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더라도 도시 공무원과 시의회가 개방적이지 않았다면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은 열리지 못했을 것이다. 페스티벌을 준비한 사람들은 헌신적으로 나서 외부의 유명 배우들을 섭외했고, 주민들도 자원봉사자로 나서 텐트를 만들었다. 캐나다의 스트랫퍼드는 영국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의 짝퉁이었지만, 진품 못지않은 완벽한 짝퉁으로 우뚝 섰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이사
이 글의 원문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35호(6월 15일자)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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