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무장세력에게 납치된 한국인 엄모 씨(34)는 의료봉사단체 ‘월드와이드서비스’ 소속 동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나들이를 나섰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산책 마치고 오는 길에 실종된 듯”
엄 씨는 지난해 8월 사다에 온 뒤 월드와이드서비스 네덜란드 본부의 승인을 받고 정식 단원으로 활동해왔다. 한국인 의사의 자녀(초등학교 6년생) 교육을 담당하면서 병원 일도 도왔으며 8월 귀국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다에는 월드와이드서비스 소속으로 사다의 보건소 격인 ‘리퍼블리칸 병원’에서 일하는 한국인 의사 4명과 가족, 그리고 엄 씨 등 모두 8명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현지 봉사활동을 벌여온 치과의사 이모 씨(48)는 “엄 씨가 금요일에 마땅히 할 것도 없어 12일 오후 4시(현지 시간) 집에서 차로 15분 떨어진 와디(물이 마른 계곡)로 산책을 다녀오겠다고 했다”며 “오후 6시까지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해가 저물어도 돌아오지 않아 찾아 나섰지만 행방을 알 수 없었고 휴대전화도 꺼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와디는 사다 중심지에서 멀지 않은 데다 주변에 현지인 마을도 있어 평소에도 가끔 산책했던 곳”이라며 “수소문해보니 이들을 봤다는 주민도 있어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실종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예멘서 가장 위험지역
엄 씨 등이 납치된 예멘은 3월 한국인 관광객 4명이 알카에다의 폭탄테러로 목숨을 잃는 등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사다는 2004년 이후 정부군과 시아파 반군의 충돌로 수천 명이 사망할 정도로 예멘에서도 가장 위험한 지역이다. 예멘의 대부분 지역이 3월 테러 이후 여행제한 지역으로 지정됐지만 사다는 테러 이전에 이미 여행제한 조치가 내려져 있었다.
예멘 전체에서 수니파가 다수인 데 비해 사다에서는 시아파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한국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중앙정부의 경제적 차별, 종교활동에 대한 간섭 등으로 예멘 정부에 불만을 가진 반정부 세력이 준동하고 활동하는 지역”이라고 전했다.
예멘 정부가 납치의 배후로 지목한 ‘후티 자이디’는 대표적 반군세력이다. 이들은 이전에도 사다 지역의 알살람 병원 의료진을 납치한 적이 있다. 2004년 9월 지도자 후세인 바드르 에딘 알후티가 사살된 이래 끊임없이 정부군과 대립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양자 간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협정의 이행을 두고 갈등을 빚어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납치를 했다고 나서는 세력이 없어 길을 잃었거나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후티 자이디’ 그룹 대변인은 “우리는 외국인을 납치하지 않았다”며 “정부가 우리의 이미지를 훼손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주예멘 대사관이 현재 일행의 소재 파악과 신변 안전을 위해 독일, 영국, 예멘 정부와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 가족 “8월 돌아온다 했는데…”▼
납치된 엄 씨의 경기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집에는 아버지(63)와 여동생(31)이 엄 씨의 무사귀환을 학수고대했다. 엄 씨의 어머니는 4, 5년 전 작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엄 씨의 아버지는 “활발한 성격으로 종교단체를 통해 이전에도 외국에 두 차례 봉사활동을 다녀왔는데 예멘에 갈 때는 위험지역이라 걱정했지만 ‘단체에서 활동한다’며 가족을 안심시켰다”고 말했다. 엄 씨의 여동생은 “얼마 전에 언니가 편지를 보내 ‘남자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8월 초쯤에 귀국한다’고 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