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믿기지가 않아요. 8월에 예정대로 올 줄 알았는데….”
예멘에서 납치됐다 숨진 것으로 알려진 엄영선 씨(34·여)의 여동생 미선 씨(30)는 충격에 울먹이며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힘든 모습이었다. 여동생은 이날 오후 경기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집에 머물다 방송보도를 통해 비보를 접했다. 현재 아버지와 미선 씨가 함께 살고 있고, 어머니는 4, 5년 전에 작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동생은 집안의 불을 모두 꺼놓은 채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있었다. 건축 공사 일을 하는 아버지 엄용대 씨(61)는 이날 서울의 한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다 오후 9시 15분경 집에 도착했다. 짙은 색 잠바를 입은 아버지는 충격 때문에 굳은 얼굴이었다. 아버지는 한 손에 작업화가 든 상자를 든 채 취재진을 피해 곧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지인의 전화로 비보를 전해들은 아버지는 퇴근길에 집에 전화를 걸어 “아직 공식 확인된 게 아니니 기다려보자”며 끝까지 작은딸을 달랬다고 한다.
영선 씨는 지난 1월 자신의 블로그에 예멘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영어로 “몇 차례 납치사건이 있어 수도인 사나에 나갈 때마다 항상 보호를 요청한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썼으나 그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웃 주민들은 “납치단체들이 아무 죄 없는 사람을 해칠 줄 몰랐다”며 “한 아파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서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영선 씨는 경기 수원시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대전의 침례신학대 기독교교육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국내 초등생 영어학습지 교사로 일하다 4, 5년 전부터 국제의료자원봉사단체 월드와이드서비스에서 활동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네덜란드와 터키 등 2개국에서 각각 1년씩 영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고, 지난해 10월 봉사활동을 나갔다가 8월 초 귀국할 예정이었다.
수원=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