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바산고바 씨는 다음날 아침 멀쩡한 모습으로 학교에 다시 출근했다. 주변 사람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자빠진 것은 물론. 알고 보니 살인 사건은 경찰이 그의 목숨을 노린 범죄자를 잡기 위해 연출한 것이었다.
횡령 범죄가 들통 날 것을 겁낸 블라디미르 루킨 부학장이 두 명의 청부업자를 고용해 바산고바 씨를 죽이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꾸며낸 연극이었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청부업자에게 약속대로 9400달러를 건네려던 루킨 씨는 사건이 벌어진 날 저녁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18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바산고바 씨 살해 사건과 같은 함정 수사가 러시아에서는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세계적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고향인 세인트 페테스부르크에서는 온갖 범죄와 음모만큼이나 이를 막기 위한 연극적 허구와 조작된 사건이 수시로 일어난다.
바산고바 씨 사건만 해도 치밀하게 계획됐다. 그녀가 경찰과 모의한 대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지갑을 꺼내려는 순간 괴한 역을 맡은 남성이 칼로 찌르는 척하며 가짜 피를 주변에 흩뿌렸다. 괴한의 도망, 피해자의 병원 이송 등 모든 과정도 미리 준비된 각본대로 이뤄졌다. 바산고바 씨는 "몇 초밖에 걸리지 않은 짧은 연극이었는데도 굉장히 무서웠다"고 말했다.
수사당국은 허위 사실을 언론에 흘려 보도하게 한 뒤 이에 반응하는 용의자를 검거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 경찰에서 수사관으로 일했던 예브게니 비쉔코브 기자는 "수사 시 사건의 공범자를 유인하기 위해 기자에게 날조된 기사를 써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과 다를지 몰라도 거짓이 범죄 해결에 도움이 된다"며 "필요하다면 이 방식이 사용된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전하면서 "러시아 시민들 대다수가 언론과 경찰을 믿지 않게 만드는 결과"라고 꼬집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