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전략핵무기감축 협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가 핵무기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네덜란드를 방문 중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20일 “미국이 미사일방어(MD) 계획에 대한 러시아의 우려를 없앤다면 러시아는 전략핵무기를 획기적으로 줄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2002년 모스크바 군축협상에서 미-러 양국이 2012년까지 각각 보유하기로 합의한 핵탄두는 1700∼2200개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날 “핵무기를 2002년 합의한 수준 미만으로 반드시 줄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탈리야 티마코바 크렘린 대변인은 “23일 제네바에서 열리는 양국의 군축 실무회담 러시아 대표단에 대통령의 의지가 전달됐다”고 말했다고 리아 노보스티 통신이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미-러 양국이 올해 12월 시효가 끝나는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1)을 개정하면서 보유 핵탄두를 1000개 미만으로 줄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가 내건 조건은 미국 MD 계획의 변경이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미국의 전 세계 MD 계획에 동의할 수 없으며 (START-1을 대체할) 새 조약에 MD와 핵감축을 연계한다는 조항을 명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는 2013년까지 체코와 폴란드에 배치될 동유럽 MD 기지에 줄곧 반대한다는 방침을 유지해 왔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추진했던 동유럽 MD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 윌리엄 린 미 국방부 부장관은 16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동유럽 MD는 여러 선택사항 중 하나일 뿐이며 이를 추진할지에 대해 아직 결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다음 달 6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미-러 정상회담에서 동유럽MD와 핵감축에 대한 대타협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안톤 흘롭코프 모스크바 에너지전략연구소장은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맞아 양국 정상이 국방비의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핵전력에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핵 감축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일부 러시아 언론들은 “양국 정상이 핵무기 대폭 감축에 합의한다 하다라도 이런 저런 조건이 붙어있기 때문에 실제 감축 이행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