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에 2000원 ‘생명의 전화’를 선물하세요”

  • 입력 2009년 6월 29일 02시 59분


24일 이집트 헬루완 쓰레기마을 집 안마당에서 놀고 있던 아딜 씨의 아이들. 기아대책 한국본부 일행이 장난감을 나눠줬으나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방인들이 낯설었는지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다. 헬루완=황형준 기자
24일 이집트 헬루완 쓰레기마을 집 안마당에서 놀고 있던 아딜 씨의 아이들. 기아대책 한국본부 일행이 장난감을 나눠줬으나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방인들이 낯설었는지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다. 헬루완=황형준 기자
이집트 카이로 남쪽 쓰레기 마을… 물도 전기도 교육도 없었다

NGO ‘기아대책’ 동행취재

23, 24일 이틀간 국제NGO(비정부기구)인 한국국제기아대책본부(기아대책) 두상달 이사장 일행과 함께 둘러본 카이로 일대 빈민촌의 삶은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연상하게 했다.

빈부격차가 큰 데 이 나라에서 빈곤의 그림자는 무엇보다 어린이들에게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기아대책 측은 배고픔과 질병의 위험에 방치돼 있는 빈곤층 어린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이집트에서 어린이개발사업(Child Development Program)을 운영할 계획이다.

●지체장애 아동 돌보는 천사원

23일 오전 10시 이집트 카이로의 쇼브라지역.

아이작 씨(30)가 사는 곳은 9층 아파트에 위치한 지하실이다. 지하실과 연결되는 계단 입구와 10여 평 남짓하게 천장도 없는 지하실 공간이 그의 집. 침실로 쓰는 방과 건물 벽에 슬레이트 지붕으로 천장을 막은 부엌으로 그의 집은 이뤄져 있다.

건물 수위로 일하는 그는 하루 종일 건물 계단을 청소하거나 입주민들의 집을 청소해주고 심부름을 하는 일이 전부다. 그가 한달에 버는 돈은 275파운드(약 원화 6만 원)이고 주민들의 심부름을 하면서 생기는 부가수입은 2~5파운드 정도. 이곳에서 맬렉(8)과 크롤로스(5) 두 아들을 키우며 1층엔 두 아들이, 지하실 침실에서 부인과 함께 지낸다.

자폐를 앓고 있는 큰 아들 맬렉은 누군가 돌봐주지 않으면 길거리를 헤매기 일쑤다.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2시까지 맬렉을 돌봐주는 곳은 집으로부터 걸어서 10~15분 거리에 있는 천사원(angel's garden). 이곳은 기아봉사단원인 송용섭 원장이 운영하는 장애아를 위한 시설이다.

천사원은 10년 전부터 이집트 전통 기독교인 콥트교회 사제들로부터 시작된 보육원이다. 기아대책은 이곳을 통해 CDP(Child Development Program) 사업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곳에 오는 22명의 아동은 자폐, 다운증후군, 우울증 등 8가지 지체를 앓고 있다. 규정상 300파운드(2만여 원)를 내게 돼 있지만 아이작 씨 가족을 비롯해 대부분 돈을 내기보다는 천사원에서 교통비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이곳의 장점은 최하층 계층의 이집트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우유, 과일 등 영양식을 제공하고 그들이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돌봐주는 것. 50여 평되는 공간의 작은 집이지만 공작실, 시청각실, 물리치료실 등 6개의 방에서 6명의 교사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곳의 현지인 책임자는 시각장애를 앓고 있는 이마드 씨(32). 그는 "무료봉사로 시작한 천사원은 장애아동들을 위해 설립된 기관"이라며 "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빈민층의 아이들을 장애 증상에 따라 제대로 교육을 시키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송 원장은 "이곳에 아이들을 맡긴 부모들은 대부분 목수 등 노동자로 이뤄진 빈민층"이라며 "이집트인들이 근친상간 등을 통해 지체장애를 겪게 되는 일이 많지만 빈민층이 대부분이어서 방치되는 어린이들이 많다. 국제 사회의 따뜻한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쓰레기 속에서 사는 아이들

24일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남쪽에 접해있는 도시 헬루완의 쓰레기마을.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시큼한 쓰레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곳에 살고 있는 300여 가구, 2300여 명의 주민들은 폐가(廢家)에 가까운 건물에서 쓰레기 속에서 가축과 한 데 섞여 살고 있었다. 물과 전기는 아예 들어오지 않는다. 일주일에 1, 2번 물차가 들어오면 드럼통에 물을 받아놓고 식수로 사용한다. 이 마을 사람들은 카이로의 도시지역에서 나온 쓰레기를 분류해 음식찌꺼기 등은 가축의 사료로 사용하고 재활용품들을 골라 팔며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곳에서 만난 아딜 씨(50)의 가족은 부인과 아들 6명, 딸 4명 등 모두 12명. 집 안으로 들어가자 수 백 마리의 파리가 시야를 가렸다. 13살짜리 맏딸을 비롯해 자식들은 버려져 딱딱하게 굳은 빵을 주워와 돼지 먹이로 쓰기 위해 망치로 잘게 부수고 있었다. 생후 3개월 된 갓난아이를 안고 있던 아딜 씨의 부인은 기자에게 "이 아이를 데려가고 싶으면 데려가라. 아이가 10명이나 있으니 한 명쯤 데려가도 괜찮다"고 말했다. 막내 아이도 병원이 아닌 쓰레기와 섞여있는 이곳 집에서 낳았다.

이 마을 사람들은 신종 플루가 유행하면서 더 살기가 팍팍해졌다. 지난달 중순 이집트 정부에서 이들이 사육하는 돼지에 대해 폐사 지시를 내렸다. 이슬람교 신도가 대부분인 이집트에서는 기독교를 믿는 '자발린'(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들만 돼지를 사육하고 돼지고기를 먹는다. 그러나 정부의 강제 폐사조치로 이 마을 주민들은 모두 원가의 10%만 보상받고 키우던 돼지들을 폐사시켜야 했다. 아딜 씨는 "키우던 돼지 10마리를 모두 폐사시키면서 수입이 없어 살 길이 막막해졌다"고 말했다.

기아대책 일행은 25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자치구에 위치한 베들레헴을 방문해 베들레헴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빈민층을 돕기 위한 기금 1만4200여 달러를 현지인들에게 전달했다. 후원 문의 기아대책 전화(02-544-9544) 또는 홈페이지(www.kfhi.or.kr). ARS는 060-700-0770(한 통화 2000원).

헬루완=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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