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 군부 쿠데타… 오바마, 중남미정책 딜레마

  • 입력 2009년 6월 30일 02시 58분


장갑차에 맞선 시민들28일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에서 호세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통령 관저 주변을 장갑차로 봉쇄한 군인들과 대치하고 있다. 테구시갈파=로이터 연합뉴스
장갑차에 맞선 시민들
28일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에서 호세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통령 관저 주변을 장갑차로 봉쇄한 군인들과 대치하고 있다. 테구시갈파=로이터 연합뉴스
차베스 환영 받는 셀라야온두라스의 호세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가운데)이 28일 니카라과의 마나과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왼쪽)과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오른쪽)의 환대를 받고 있다. 이들은 남미 국가 정상들의 긴급회동을 열고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마나과=EPA 연합뉴스
차베스 환영 받는 셀라야
온두라스의 호세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가운데)이 28일 니카라과의 마나과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왼쪽)과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오른쪽)의 환대를 받고 있다. 이들은 남미 국가 정상들의 긴급회동을 열고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마나과=EPA 연합뉴스
온두라스 군부 쿠데타… 좌파 대통령 셀라야 축출
찬성? 반대?… 오바마, 중남미정책 딜레마

중미 온두라스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해 개헌을 통한 집권 연장을 꾀하던 호세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57)이 추방됐다. 중미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건 냉전 종식 이후 처음이다. 중남미 좌파 지도자군(群)의 한 명인 셀라야 대통령 축출은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에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비난의 톤을 낮추면 쿠데타를 용인했다는 거센 반미 선동의 빌미를 줄 수 있고, 강력 비난하면 온두라스 내 보수층의 지지를 받는 쿠데타 세력이 고립돼 좌파 지도자의 장기집권 시도를 회생시켜 주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쿠데타

셀라야 대통령은 집권 연장을 위해 밀어붙인 개헌 국민투표 시작 몇 시간 전인 28일 새벽 군인들에 의해 코스타리카로 추방됐다. 그는 코스타리카 공항에서 잠옷 차림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무장군인들이 침실에 들어와 총을 가슴과 머리에 겨눴다. 미국이 쿠데타 반대를 분명히 밝히면 쿠데타 세력은 48시간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니카라과 수도 마나과로 가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비롯한 중남미 지역 좌파 지도자들과 대책을 논의했다. 한편 대통령궁 앞에는 2000여 명의 친정부 시위대가 농성을 벌이며 그의 복권을 요구하고 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셀라야 대통령은 그동안 재집권 시도로 정국을 혼미에 빠뜨렸다. 국민투표 준비 업무를 거부한 참모총장을 해임시켜 군부와 갈등을 빚었다. 대법원은 “국민투표는 대통령의 재집권 음모에 따른 불법”으로 규정하며 쿠데타 군부의 편에 섰다. 의회는 “대통령이 헌법과 법을 반복적으로 위반하고 헌법기관들의 명령과 판결을 무시하는 등 직권남용을 했다”며 만장일치로 탄핵을 결의하고 대통령 후임에 로베르토 미첼레티 국회의장을 임명했다.

○ 오바마의 선택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온두라스의 모든 정치와 사회 주체들은 민주주의 규범과 법치를 존중해 줄 것을 촉구한다”며 외부간섭을 배제한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을 강조했다. 미 국무부도 “셀라야 대통령을 온두라스의 유일하고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론적인 수준의 쿠데타 비판이다.

미국 입장에서 셀라야 대통령은 달가운 존재가 아니다. 중남미 좌파의 맹주 역할을 자임하는 차베스 대통령의 우군이면서 그와 똑같이 집권 연장을 위해 개헌을 시도하고 좌파 포퓰리즘 정책을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개헌 시도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라는 온두라스 내 비판 여론도 강하다. 하지만 미국은 온두라스에 공군 기지를 갖고 있어 군사적으로는 협력관계다.

한편 차베스 대통령은 “쿠데타 배후에 양키제국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유사시 베네수엘라군이 개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행정부 관리들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한 관리는 뉴욕타임스에 “지난 수일간 쿠데타를 막기 위해 중재 노력을 했으나 결국 일이 터졌다”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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