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미 온두라스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해 개헌을 통한 집권 연장을 꾀하던 호세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57)이 추방됐다. 중미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건 냉전 종식 이후 처음이다. 중남미 좌파 지도자군(群)의 한 명인 셀라야 대통령 축출은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에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비난의 톤을 낮추면 쿠데타를 용인했다는 거센 반미 선동의 빌미를 줄 수 있고, 강력 비난하면 온두라스 내 보수층의 지지를 받는 쿠데타 세력이 고립돼 좌파 지도자의 장기집권 시도를 회생시켜 주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쿠데타
셀라야 대통령은 그동안 재집권 시도로 정국을 혼미에 빠뜨렸다. 국민투표 준비 업무를 거부한 참모총장을 해임시켜 군부와 갈등을 빚었다. 대법원은 “국민투표는 대통령의 재집권 음모에 따른 불법”으로 규정하며 쿠데타 군부의 편에 섰다. 의회는 “대통령이 헌법과 법을 반복적으로 위반하고 헌법기관들의 명령과 판결을 무시하는 등 직권남용을 했다”며 만장일치로 탄핵을 결의하고 대통령 후임에 로베르토 미첼레티 국회의장을 임명했다.
○ 오바마의 선택
미국 입장에서 셀라야 대통령은 달가운 존재가 아니다. 중남미 좌파의 맹주 역할을 자임하는 차베스 대통령의 우군이면서 그와 똑같이 집권 연장을 위해 개헌을 시도하고 좌파 포퓰리즘 정책을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개헌 시도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라는 온두라스 내 비판 여론도 강하다. 하지만 미국은 온두라스에 공군 기지를 갖고 있어 군사적으로는 협력관계다.
한편 차베스 대통령은 “쿠데타 배후에 양키제국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유사시 베네수엘라군이 개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행정부 관리들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한 관리는 뉴욕타임스에 “지난 수일간 쿠데타를 막기 위해 중재 노력을 했으나 결국 일이 터졌다”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