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戰場)에선 좌파도 우파도 없다. 게이(동성애자)도 이성애자도 없다. 오로지 동료만 있을 뿐이다. 게이란 이유로 쫓겨나는건 말이 안된다."
한국계 2세로 미국 뉴욕 국가방위군 소속인 대니얼 최 중위(28)는 지난주 강제전역을 명령받았다. 2003년 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2006년부터 1년 반 동안 이라크 전에 참전했으며, 아랍어에 능통한 장래가 촉망받는 엘리트 장교인 그가 '해고'된 이유는 "동성애자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항의해 최 중위는 동료들과 함께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 규정 폐지를 촉구하는 캠페인에 들어갔다.
'Don't ask, Don't tell' 규정의 존폐 문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앞에 놓인 과제 가운데 매우 까다롭고 휘발성이 높은 이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때 이 정책의 폐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취임후 이를 실행에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려하자 제임스 존스 국가안보보좌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등 참모들이 조심스레 만류했다. 경기부양책, 관타나모 기지폐쇄, 의료보험 개혁 등 숱한 개혁과제들을 던져놓은 상태에서 '또다시 휘발성 강한 이슈를 접시에 담는건 부담스럽다'는 이유였다. 오바마 대통령도 한발 물러섰다. 그러자 동성애 권익 옹호 단체들은 반발했다.
하지만 최근 오바마 행정부에선 이 조항의 폐지를 시사하는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금주초 백악관에서 동성애 권익 단체 지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내가 여러분을 실망시킨 걸 안다. 하지만 임기말쯤이면 여러분은 (우리 행정부에 대해) 매우 좋은 인상을 갖게 될 것"이라며 정책 폐지를 시사했다.
게이츠 국방장관도 "정책을 좀 더 인간적인 쪽으로 변화시킬 방법을 모색중"이라고 말했고. 마이크 멀린 합참의장도 금주초 "규정 개정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매우 확고하다.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으며, 신중하게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이념적 토대를 제공하는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CAP)는 지난주 발표한 보고서에서 "법 개정에는 많은 논란과 시간이 걸리므로 우선 대통령 행정명령을 발동해 강제 전역을 중단시키라"고 제안했다.
이에맞서 1000명 이상의 예비역 장교들은 최근 의회에 현행 법을 그대로 놔두라는 청원을 냈다. "군대는 '강요된 친밀성' 속에서 생활해야 하는 사회다. 명령과 규율이 가장 중요하며 현행 동성애 규정도 그런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보수그룹들도 "사회가 변했을지라도 군대는 변하지 않았다. 군 정책이 대중문화나 길거리 세태의 선호에 좌우되면 안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런 논란속에서 터진 최 중위의 전역은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93년 법 제정후 1만3000명, 오바마 행정부 출범후에도 265명이 강제 전역했지만 266번째 전역자인 그의 솔직한 인생고백과 엘리트 군인으로서의 자질 등이 행정부내 논의와 맞물려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침례교 목사 집안에서 자라났다는 최 중위는 공영라디오방송(NPR) 인터뷰에서 "10대 초반에 내가 동성애자임을 알게됐다. 잠자리 들기 전 '제발 내일 눈을 뜨면 이성애자로 다시 태어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에서 처음엔 동료와 부하들에게 '마샤라는 여자친구가 있다'고 거짓말했다. 하지만 내가 커밍아웃한 뒤에도 누구도 내가 동성애자라는데 개의하지 않았다. 우린 생사를 함께 하는 동료일 뿐이다"며 "어떤 행동 때문이 아니라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강제전역된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Don't ask, Don't tell:
미군의 동성애 관련 정책을 상징하는 용어. 미군은 전통적으로 동성애자의 복무를 금지해왔으나 동성애 단체들의 반발로 1993년 빌 클린턴 정부때 '본인이 동성애자라고 밝히지 않는 한 복무할 수 있다'는 절충점을 찾았다. 당시 제정된 연방법은 '누구도 군복무중에 동성애 기호 또는 동성애를 할 의향을 표출해선 안된다'(don't tell)고 규정했다. 동시에 '상급자는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 발생하지 않는 한 군인의 성적 기호에 대한 조사를 해선 안된다'(don't ask)고 규정하고 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