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외교 안해… 북핵대응 공조가 모범사례
다쳤던 내 팔이 나아지듯 美의 영향력도 회복될것”
미국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마침내 ‘미국의 외교’를 논했다. 취임 6개월을 맞는 그는 15일 미국외교협회 연설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 등을 돌면서 제시한 외교안보정책의 뼈대를 집대성했다. 리처드 하스 회장의 사회로 열린 이날 연설에는 외교안보전문가와 교수, 기자 등 500여 명이 몰려 클린턴 장관의 첫 ‘메이저 스피치(주요 연설)’에 쏠린 관심이 얼마나 큰지 보여줬다. 클린턴 장관은 16일부터 인도 태국 순방에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27, 28일 워싱턴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주도한 뒤 파키스탄 방문길에 오른다.
○ “세계와 협력하는 리더가 되겠다”
한마디로 ‘미국의 리더십’을 제목으로 할 만한 이날 연설에서 클린턴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는 스마트 외교의 본질이 무엇이며 향후 외교안보정책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상세히 밝혔다.
그는 새로운 미국 외교는 △공동의 이익 △공유된 가치 △상호 존중에 기반을 둔 ‘관여(engagement)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제사회를 규정할 수 있는 두 가지 피할 수 없는 사실을 든다면 첫째 어느 한 국가가 독자적으로 국제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며, 둘째 대부분의 국가는 인류 공동의 위협에 직면한 일종의 운명 공동체라는 것. 따라서 미국의 리더십은 이런 지구촌 공동운명체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해 그 속에서 국가 간 협력과 화해를 증진시키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제는 미국이 새로운 세계질서를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느냐 혹은 그렇게 되어야 하느냐가 아니라 미국이 21세기를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 하는 것”이라며 “미국 혼자 문제를 풀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떤 문제도 미국의 참여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국가 간 협력을 강화하고 국제기구나 지역협력기구를 보완하며 △미국과 생각을 달리하는 국가와도 ‘원칙에 입각한’ 대화에 나서며 △국제개발협력을 증진시키는 한편 △분쟁지역에서의 민-군 협력을 확대하고 △경제력, 군사력 같은 미국 국력의 원천을 국제관계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것.
클린턴 장관은 “우리는 우방국에 우리가 제시하는 길을 따르든지 아니면 각자의 길을 가자고 말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식의 이분법적인 태도는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내세웠던 ‘힘의 외교’와 명백한 선을 그었다. 또 지난달 골절상을 당한 오른팔을 들어 올리며 “최근 몇 년간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미국의 영향력 회복은) 날이 갈수록 나아지고 있는 내 팔 같은 것”이라고 말해 웃음과 함께 큰 박수를 자아냈다.
○ 도발 국가들에 대한 경고
그는 북한에 대해 최근 미국 및 국제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대응을 “모범 사례”라고 말했다. “외교 노력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두 개의 결의가 만장일치로 통과됐고 중국 러시아 인도가 적극적으로 다른 나라들의 결의 준수를 설득하고 있다는 점은 단기적 결과”라면서 “장기적으로는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이뤄내기 위한 더욱 강력한(tougher) 공동의 노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을 향해서도 “이란은 핵무장을 할 권리가 없으며 그것을 막겠다는 우리의 결단은 확고하다”며 “어떤 행동을 하든 ‘직접 대화’의 문이 열려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경고했다.
::스마트 외교::
조지 W 부시 행정부 초기 미국 행정부가 추구했던 일방주의 외교에 대한 대안으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주창했던 개념. 군사력, 경제력 같은 하드 파워와 국가의 매력, 가치의 힘 같은 소프트 파워를 성공적으로 결합할 때라야 진정한 21세기의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생각. 지난해 미국 대선과정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가 향후 미국 외교안보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개념.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