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보다 위선이 치명타 암투병 아내 몰래 혼외정사, “도덕성 주장해놓고…” 분노 부인들 고해성사 자리 동행…관용으로 ‘마지막 내조’ 프랭클린 루스벨트, 존 F 케네디, 빌 클린턴, 루돌프 줄리아니, 게리 하트, 뉴트 깅리치, 존 에드워즈….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두고 외도한 미국 정치인들이다. 최근에도 예외는 아니다. 마크 샌퍼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가 아르헨티나에 정부(情婦)를 둔 것으로 밝혀졌고, 한때 공화당의 차기 대권주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됐던 존 엔자인 상원의원(네바다) 역시 선거참모였던 유부녀와의 불륜이 들통났다. 지난해 미국 민주당 대선과정에서는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노스캐롤라이나)이 암 투병하는 아내를 두고 혼외정사를 즐겼던 사실이 공개돼 충격을 줬다. 뉴욕 주 검찰총장 출신으로 ‘월스트리트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의 엘리엇 스피처 전 뉴욕 주지사 역시 불법 매춘행위로 미국 사회를 들끓게 했다. ○ 외도에 대해서는 민주당 출신 정치인에게 더 엄격한 잣대? 최근 사례를 보면 보수 성향의 정치인보다 진보 성향의 정치인의 외도가 더 큰 정치적 파문을 일으켰다. 진보노동계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던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이나, 1987년 젊고 섹시한 이미지로 대권을 넘보았던 게리 하트 전 상원의원(콜로라도)은 모델과의 염문설이 터지면서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이 끊겼다. 2006년 정치판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며 뉴욕 주지사에 당선된 뒤 2년 만에 정치판에서 사라진 스피처 전 주지사 역시 민주당 출신. 반면 공화당 출신인 엔자인 상원의원과 ‘워싱턴DC 마담’의 주고객이었던 데이비드 비터 상원의원(루이지애나)은 의원직을 유지한 채 정치적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리버럴한 미국인들은 정치인의 외도를 보고 자신들의 믿음이 배반당했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그 정치인들이 도덕적 가치를 설교하고 다닐 경우 더 큰 분노를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 불륜 자체보다 위선이 더 문제? 비슷한 시기에 불륜이 들통 났지만 엔자인 의원보다 샌퍼드 주지사에 대해 미국인들이 더 분노하는 이유는 위선이라는 지적도 많다. 샌퍼드 주지사는 1990년대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에 휘말렸던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투표에서 “정치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도덕적 정통성”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의 경우도 암 투병하는 아내를 돌보기 위해 민주당 대선후보 사퇴를 한때 고려하기도 했다는 순애보가 공개되면서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결국 그의 모습이 허상이었다는 실망을 안겨준 것이 치명타가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공화당 출신 깅리치 하원의장이 2차례에 걸친 이혼과 외도 고백에도 살아남은 것은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를 주장하지 않았고 사적인 외도를 통해 직권남용 등의 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 정치인의 아내들은 왜 그들을 용서할까? 흥미로운 것은 정치인의 아내들이 남편의 외도에 거의 예외 없이 관용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 정치인들이 외도를 고백하는 자리에 부인들은 자리를 함께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그랬고 하버드대 법대를 졸업한 뒤 변호사로 잘나가다가 남편의 내조를 위해 변호사 직을 그만두었던 스피처 전 주지사의 부인 실다 씨 역시 남편의 사퇴 기자회견 내내 그의 옆을 지켰다. 자식들과 가정을 지키고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희망 등의 이유도 있겠지만 남편의 정치생명을 지키려는 ‘마지막 내조’로 보는 것이 미 언론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샌퍼드 주지사의 기자회견장에 부인은 없었다. 여성단체 회원들은 아르헨티나 여성과의 불륜을 빗대 ‘돈트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라는 티셔츠를 입고 샌퍼드 주지사의 부인 제니 씨를 응원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