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러시아가 ‘브릭스(BRICs·신흥경제국)’ 지위를 잃을 위험에 처했다고 아사히신문이 22일 보도했다. 에너지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산업구조의 불균형으로 러시아 경제가 신뢰를 잃었고 이는 유동성 경색으로 이어져 기업이 도산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브릭스 4개국 가운데 인도와 중국은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올해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이어가며 선방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5% 이상의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세계경제가 점차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에도 러시아는 1.5%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게 IMF 전망이다.
러시아 건설산업은 러시아의 심각한 경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될 뻔했던 ‘러시아타워’와 ‘해양수족관’ ‘TV방송센터’ 등 대형 랜드마크 빌딩 건설이 잇따라 중단됐다. 이 건물들은 러시아 경제가 한창 호황을 누리던 2, 3년 전에 착공된 것들이다.
러시아 경제가 급성장하자 몇 년 전에는 외국자본도 물밀 듯 러시아로 유입됐다. 하지만 지난해 8월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침공하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정치적 불안으로 외국자본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지난해 10월 세계 금융위기로 러시아 금융시장은 아예 씨가 말랐다. 지난해 4분기(10∼12월)에 유출된 외화자금만 1300억 달러에 이른다. 급격한 외자 유출로 러시아 루블화는 달러 대비 40% 이상 하락했다. 호황 당시 저금리 외국자본을 차입한 러시아 기업들은 루블화 폭락으로 금리 부담이 높아졌고 이를 견디지 못해 무너지기 시작했다. 현재 러시아 은행들의 불량채권 비율은 10∼20%에 달할 정도로 경기가 흉흉하다.
석유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러시아의 불균형한 산업구조도 심각한 문제다. 러시아 경제에서 에너지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60% 이상으로 자원대국인 브라질(30%)의 두 배에 이른다. 금융위기 이후 자원 가격이 폭락하자 세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에너지 관련 세금이 크게 줄어들면서 국고가 바닥났다. 각국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동원해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지만 국고가 텅 빈 러시아로서는 속수무책이다.
러시아 경제전문가들은 “에너지 편중이 심한 러시아의 산업구조는 단기간에 개선되기 힘들기 때문에 자원가격이 예전 수준을 회복하지 않는 한 더딘 경제성장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