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4500억달러 아세안 시장 잡아라”… 美中日, 구애 경쟁

  • 입력 2009년 7월 29일 02시 59분


美 ‘환심 사기’ 中 ‘굳히기’ 日 ‘초조’

미국 중국 일본 3국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타이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에 뜨거운 구애 경쟁을 벌이고 있다. 평소 이 지역에 외교적인 비중을 거의 두지 않아 왔던 미국은 ‘새로운 관계 정립’을 선언했고, 중국은 지리적 인접성과 막대한 자본 등을 앞세워 동남아의 ‘맹주’ 굳히기에 돌입했다. 그동안 동남아 최대 원조국이었던 일본도 추가로 각종 경제지원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 “경제 지원” 치열한 경쟁

23일 태국 푸껫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기자회견장. 미국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6분 30초 회견 동안 ‘파트너’라는 단어를 무려 9차례나 반복했다. 그는 워싱턴과 아세안을 잇는 외교대표부를 신설하겠다고 밝히면서 “미국은 이제 동남아시아로 되돌아왔다”고 선언했다. 전임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아세안 관련 국제회의에는 아예 불참하는 등 노골적으로 동남아 무시 정책을 펴온 것과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클린턴 장관은 이 지역에 중국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미국에 질세라 중국도 막대한 외환 보유액과 지리, 문화적 인접성을 무기로 성큼성큼 다가서고 있다. 4월 아세안 각국의 사회간접자본시설 정비에 100억 달러를 내놓기로 한 데 이어 이달부터 아세안과의 무역거래에서 위안화를 결제통화로 쓸 수 있도록 했다. 결제수단으로 위안화가 쓰이면 중국과 아세안 기업 모두 달러 결제에 따른 환차손 등 리스크가 사라져 무역거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아세안과 중국의 무역 총액은 총 2311억 달러로 2003년의 3배로 급증했다.

한편 최근 20여 년간 자타가 공인하는 동남아 최대 경제지원국이었던 일본도 이 지역에서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외화유동성 위험에 빠진 아세안 회원국에 6조 엔을 긴급 지원하는 내용의 통화교환협정을 최근 체결한 것이 대표적. 외환위기에 빠진 국가에 일본이 엔화 융자를 결정한 것은 처음이다. 이와 함께 일본은 동남아 국가가 엔화표시 채권(사무라이본드)이나 자국통화표시 채권을 발행할 때 각각 최대 5000억 엔과 500억 엔의 신용보증을 서주기로 하는 등 위안화 영향력 견제에 나섰다.

○ 왜 아세안인가

무려 5억5000만 명에 달하는 시장 규모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아세안의 주요 6개국 국내총생산(GDP) 합계는 지난해 1조4500억 달러로 인도보다도 20% 이상 많다. 탄탄한 내수시장과 급속한 경제성장 때문에 구매력을 가진 중산층만 2억 명에 달해 브라질 러시아 인도 등 브릭스에 이은 제2신흥시장으로 여겨지고 있다. 인구 2억3000만 명을 넘는 인도네시아만 해도 올해 실질경제성장률이 3.5%에 이를 전망이고 베트남은 올 상반기(1∼6월) 소매와 서비스업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 이상 증가했다. 미얀마를 제외한 국가 대부분은 외교적 마찰도 없다. 세계 각국이 아세안을 ‘사귀고 싶은 온화한 이웃’으로 여기는 이유다.

아시아개발은행은 느슨한 공동체인 아세안이 2015년 정치 경제적으로 단일 교섭력을 가진 아세안공동체로 발전하면 이 지역의 정치 경제적 파워는 더욱 강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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