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칸센이 베트남을 종단하는 남북고속철 사업자로 잠정 선정돼 세계 고속철 수주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고속철 사업은 건당 사업규모가 수십조 원에 이르는 거대 장치산업이다. 향후 미국과 브라질, 인도 등에서 고속철 발주가 잇따를 계획이어서 한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경쟁국들은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다.
○ 동아시아 광역개발 시동 건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3일 베트남국영철도회사가 수도 하노이와 경제중심지 호찌민을 잇는 남북고속철도(1560km)에 일본의 신칸센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베트남국영철도는 신칸센 제작 및 운영업체인 JR도카이(東海)에 기술자를 파견하는 등 신칸센 기술자 육성에 착수했다. 2020년 완공 예정인 베트남 남북고속철은 총사업비가 560억 달러(약 70조 원)에 이르는 최대 규모의 국책사업이다. 베트남 정부는 필요한 자금을 일본의 정부개발원조(ODA)와 아시아개발은행(ADB), 세계은행 등에서 조달할 계획이다.
이 신문은 베트남 고속철 수주가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동아시아지역 광역개발 계획’의 중추 인프라가 될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 계획은 일본이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메콩 강 유역 5개국과 협력해 산업 인프라를 정비하고 민간자금을 끌어들여 이 지역 경제규모를 2020년까지 현재의 두 배로 키우는 프로젝트다.
○ 줄 잇는 고속철 건설에 각국 군침
고속철 사업은 단지 철도차량을 만들어 팔면 끝나는 게 아니라 제어, 신호시스템 등 운영과 유지관리, 보수 등을 아우르는 전방위 시스템 산업이다. 시속 350km 이상으로 달릴 수 있는 데다 한번에 실어 나르는 승객 수도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절대 우위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어 환경친화적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고속철 건설계획에 불을 지핀 것은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그는 올해 4월 환경친화적 고속철 정비사업에 130억 달러를 쏟아 붓겠다고 밝혔다. 가장 먼저 가시화될 것으로 보이는 구간은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를 2시간 40분에 연결하는 캘리포니아 고속철. 미국은 이외에도 10여 개의 고속철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미국은 시속 240km 이상으로 영업 운전할 수 있는 철도기술 기준이 갖춰져 있지 않아 해외 고속철 기업에서 관련 기술과 운영시스템을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도 2014년 완공 목표로 리우데자네이루∼상파울루 500km 구간을 2시간 반 이내에 연결해주는 고속철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르면 다음 달 입찰을 받아 내년에 사업자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인도와 중국도 최근 고속철 추진계획을 밝혔다.
고속철 수주전에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이 뛰어들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자국 기업들로 연합군을 구성해 이미 대만 고속철을 따냈다. 프랑스 등 유럽계도 연간 매출이 100억 달러에 이르는 거대 업체들이다. 한국도 순수 국내기술로 만든 고속열차(KTX2)를 내세워 수주전에 나설 예정이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