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인터뷰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제 생각에 그 질문은 정치적인 것 같아요.”….
11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국민대 제로원 디자인센터. 기자가 입을 열자마자 10명의 남녀는 기다렸다는 듯 질문과 의견을 발랄하게 쏟아냈다. 인터뷰 자리라기보다 브레인스토밍 회의 같았다. 이들은 ‘상상력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 연구원들. 대부분 KAIST, 서울대 등 한국 대학에서 학부를 마친 뒤 MIT 미디어랩에 재학하거나 이곳을 졸업했다. 하버드 등 다른 대학 소속으로 MIT 미디어랩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원도 있었다.
MIT 미디어랩은 1985년 MIT 안에 설립된 연구소로 ‘학제 간 융합 연구’의 선두주자로 잘 알려져 있다. 옷처럼 입을 수 있는 컴퓨터, 전자종이 등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삼성전자 등 세계적 기업이 연구 자금 등을 지원하고 있다.
○‘벤처 정신’과 ‘공동 연구기금’도 장점
MIT 미디어랩은 무엇이 유별나기에 ‘상상력 천국’으로까지 불리는 것일까. 이날 만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눠 보니 ‘MIT 미디어랩에는 있지만 한국 대학에는 없는 것’이 무엇인지가 분명히 보였다.
황당한 아이디어까지 창의적 발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원동력은 ‘공동 펀드’. 이성혁 씨는 “MIT 미디어랩 전체 이름으로 펀드를 만들어 프로젝트별로 자금을 나눠 쓴다”며 “어떤 프로젝트든 큰 위험 부담 없이 연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이나 부가가치를 따지지 않고도 자금을 받을 수 있어 실패 위험이 있어도 연구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이곳은 대기업 취업 준비생이 많은 국내 대학가와는 달랐다. 이 씨는 “미국 친구들에게 ‘넌 대학 졸업하고 대학원 가니, 취직하니’ 하고 물으면 ‘벤처기업을 하겠다’는 답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창업 열기의 배경으로 벤처 관련 펀드가 많다는 점을 들었다. 자비가 아닌 펀드로 창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실패하더라도 재정 부담은 크지 않다고 한다. 캠퍼스 내에서 “창업할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하는 투자자와 마주치는 건 드문 일이 아니라고 했다.
○ 의무제출 논문 수의 압박도 없어
“한국은 어떤 학부를 나왔는지를 너무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학부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한 제 친구는 석사 과정에서 건축을 공부했는데 건축 분야 사람들이 ‘원래 건축을 하신 게 아니네요’라고 말하더라는 겁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는 ‘학부=직업’이란 인식이 강합니다.” 미국 내 다른 대학 소속으로 MIT 미디어랩 프로젝트에 참가한 황지은 씨는 학부에 집착하는 문화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움직임을 방해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밖에도 한국 대학에는 있지만 MIT 미디어랩에 없는 것은 제출해야 하는 논문 수의 압박이다. 전기민 씨는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을 몇 편 내야 한다는 제약이 없는 편이라 실적에 구애받지 않고 흥미 있는 분야에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MIT 미디어랩을 학제 간 융합 연구의 정답으로 보는 시각을 경계했다. 정재우 씨는 한국형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MIT 미디어랩을 모방하려다 실패한 사례는 많습니다. 그대로 모방하려 했기 때문이죠. MIT 미디어랩도 성장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