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이름이 거론된 사람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 위원장은 늘 똑같은 국방색 수트와 커다란 선글라스, 키가 커 보이도록 디자인된 5인치의 굽이 달린 구두 차림으로 언론에 등장한다. 최신 할리우드 영화와 값비싼 술, 캐비아 같은 사치품을 즐기는 지도자치고는 이례적으로 구식 스타일이라는 것이 타임의 평. 이 잡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겉옷은 그의 올챙이배를 가리는 데에도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으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리스트에 올랐다. 그는 최근 휴가지에서의 승마 사진을 포함해 상반신을 모두 벗고 근육질 몸매를 과시하는 장면이 잇따라 노출됐다. 유도 챔피언이기도 했던 그는 한 나라의 정상치고는 지나치게 자주 벗은 몸을 드러내 해외 언론들로부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샀다. "알코올 중독이 만연하고 평균수명이 상대적으로 짧은 러시아에서 체력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주려는 것 아니냐"는 조롱 섞인 분석도 나왔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가다피 최고지도자의 패션은 그의 라이프스타일만큼이나 특이하다. 그는 치타를 애완동물로 키우고, 건물 붕괴가 걱정된다며 텐트 속에 머무는가 하면 늘씬한 미녀 보디가드들의 호위를 받는 '괴짜' 리더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선택하는 옷은 화려한 무지개색이 형형색색 들어가는 디자인이나 주름이 잔뜩 잡힌 치렁치렁한 스타일의 예복이다. 유목민들이 입는 가죽 옷은 "차라리 영화 '라이언 킹'의 주인공에게 더 어울린다"고 타임은 꼬집었다. 가다피 지도자는 6월 이탈리아 방문 당시 가슴에 1930년대 이탈리아에서 처형된 리비아 독립투사의 사진을 붙인 차림으로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촘파(chompa)'라고 불리는 수제 알파카 스웨터를 즐겨 입는다. 소박한 외모의 이 좌파 대통령이 해외 순방 기간마저 각 잡힌 정장 대신 스웨터를 입은 모습은 다소 촌스러워 보일 정도. 아르마니 같은 명품 정장을 선호하는 대부분의 남미 지도자들과 비교해 국민들의 평가는 그나마 낫다. 2006년 볼리비아에서는 '에보 패션'이라고 불리는 울 스웨터 디자인이 선보이기도 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도 촌스러운 패션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테헤란의 시장에서 산 30달러짜리 카키색 중국산 점퍼와 면 셔츠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아마디네재킷'이라는 이름까지 붙은 이 점퍼를 사 입고 대통령의 스타일을 따라하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가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을 하지 않는 것은 아야톨라 호메이니 최고 종교지도자가 "서양문화를 확산시키는 반이슬람적, 퇴폐적 의복"이라며 자신과의 면담시 착복을 금지한 탓도 있다.
피델 카스트로 쿠바 전 국가평의회장은 '아디다스 맨'으로 불린다. 80대에 접어든 이 고령의 지도자는 스포츠웨어 브랜드인 '아디다스' 로고가 선명한 운동복을 좋아한다. 2006년 건강이 악화됐던 그는 병원에서 환자복을 거부하고 흰색과 파랑색, 빨간색으로 디자인된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은 채 언론 인터뷰를 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줄기차게 빨간색 옷을 고집하는 패션 스타일 때문에 '인간 크레용'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정장 차림을 할 때의 넥타이부터 터틀넥 스웨터까지 붉은 색으로 도배되다시피 한다. 이는 그가 붉은색이라는 상징을 통해 그의 군사적 출신 배경과 좌파 정책, 혁명의 의지 등을 보여주려 한다는 분석이다.
이밖에도 군용 망토를 즐겨 입어 '말쑥한 드라큘라' 같다는 평가를 받은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단조로운 국방색 공산당 유니폼만 고집한 중국의 마오쩌둥, 지나치게 호사스러운 과소비 패션으로 구설수에 오른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독재자 장 베델 보카사가 순위에 들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