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명문가 장손 → 공학도 → 제 1야당 대표 “파괴적 경쟁 대신 더불어 살자” 우애론 주창조부 총리-부친 외상… 4대째 정치 장모와 배우출신 부인은 ‘한류 팬’ 1965년 18세 청년은 가문의 기대와 달리 일본 도쿄대 공대를 지망했다. 법대나 정치학과를 나와 정치인 세습이 당연시되던 그때 일본 최고의 정치명문가를 이어갈 장손으로선 파격이었다. “이제부턴 엔지니어의 시대”라는 게 청년의 진학의 변. 40여 년이 지난 올해 8월 초, 환갑을 넘긴 그는 할아버지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전 총리의 묘지 앞에 고개를 숙였다. “지금의 자민당은 할아버지가 꿈꾸던 당이 아닙니다. 당신이 살아계시더라도 저를 이해하실 겁니다.” 할아버지가 1955년 창당한 자민당과의 일대 격전을 눈앞에 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의 출사표였다. 그리고 마침내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일본 총리에 오르게 됐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뿌리를 할아버지에게서 찾는다. 동아일보에 기고한 ‘나의 정치철학-우애론’이란 글에서 그는 “조부는 제2차 세계대전 후 기세를 더하는 사회당과 공산당에 대항하는 기치로서 우애를 내걸었다. 우애 이념은 보수정당의 저류에 흐르면서 일본의 고도성장을 지탱하는 기초가 됐다”고 밝히고 있다. 하토야마 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일본 센슈(專修)대 조교수로 재직하다 1986년 중의원 선거에서 처음 배지를 달았다. 39세였다. 귀족원(현 참의원) 의원을 지낸 증조부, 총리 출신의 조부, 부친 하토야마 이이치로(鳩山威一郞) 전 외상에 이어 4대째 정치 명문가의 맥을 이은 것이다. 동생 하토야마 구니오(鳩山邦夫)는 자민당 소속 중의원 의원이다. 그러나 하토야마 대표는 1993년 탈당해 신당 사키가케를 결성했다. “냉전의 종식과 함께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어온 자민당의 역사적 역할도 끝나고 새로운 세력이 요구된다”는 게 탈당 이유였다. 그의 정치신념이 본격적으로 투영되는 것은 1996년 옛 민주당을 창당해 대표에 취임하면서부터다. 창당선언문에는 “자유는 약육강식의 방종에 빠지기 쉽고 평등은 튀어나온 못을 때리는 식으로 타락할 수 있다. 양 극단을 바로잡는 것이 우애다”라는 그의 정치관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지나친 경쟁사회’에서 탈피해 ‘더불어 사는 사회’를 건설하자는 외침도 여기서 비롯된다. 아시아 중시 외교를 강조하는 그는 동아시아공동체 창설과 아시아 통화 통합을 주창한다. 한마디로 그는 “무한경쟁으로 인간성 파괴와 이웃 간 대립을 초래하기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웃과 더불어 잘 지내자”라는 정치철학을 국내 및 외교정책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 1998년 그는 다른 야당들과 연합해 현재의 민주당을 창당하고 이듬해 대표로 선출됐으나 2002년 12월 보궐선거 참패로 물러났다. 2003년 당세 확장을 위해 자유당과 합당했고, 이때 손을 맞잡은 사람이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대표대행이다. 민주당이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다양한 성향의 인물로 구성된 것은 이 같은 합종연횡의 역사에서 비롯됐다. 하토야마 대표는 오자와 대표체제에서 3년 동안 간사장을 맡으며 ‘2인자’로서 그를 보좌해 오다 오자와 대표가 불법 정치자금 수수의혹으로 낙마하면서 올 5월 대표직에 올랐다. 취임 직후엔 ‘오자와의 그림자’라는 비판적 시각도 있었으나 추락한 당 지지율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고 총선을 승리로 이끌면서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다. 하토야마 대표는 ‘일본의 케네디 가문’이라고 불릴 정도로 정치 명문가 출신일 뿐만 아니라 재벌급 정치인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세계적 타이어 제조업체인 브리지스톤 창업자의 장녀다. 하토야마 대표는 예금액만 12억 엔이 넘고 도쿄와 지역구인 홋카이도(北海道)엔 대저택이, 나가노엔 7200m² 규모의 별장이 있다. 1996년 민주당 창당자금도 그가 댄 것이다. 부인 하토야마 미유키(鳩山幸夫·66) 여사는 일본의 유명한 배우 등용문인 다카라즈카(寶塚) 극단 출신이다. 1943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나 1960년대에 영화배우로 데뷔했고 197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탠퍼드대에 유학 중이던 청년 하토야마를 만났다. 한류스타인 이병헌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졌다. 하토야마 대표는 유세에서 “내 장모는 90세가 넘어 ‘한류스타를 만나고 싶다’면서 한글을 열심히 공부하셨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아들 하토야마 기이치로(鳩山紀一郞·33)는 부친의 뒤를 이어 도쿄대 공학부를 졸업했으며 러시아 모스크바대 연구원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