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선에서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54년간 정권을 잡았던 자민당이 맥없이 무너졌다. 이번 총선은 세 가지 점에서 새롭다. 우선 정당 간 정권교체라는 획기적 변화가 일어났다. 지금까지 일본의 정치 변화란 만년여당 자민당 내부에서의 총리 교체라는 ‘유사 정권교체’만 있었다. 이번에는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이 교체됐다.
또 하나는 유권자에 의한 선거혁명이다. 1993년 자민당이 ‘하야(下野)’한 적은 있지만 당시는 자민당의 분열 때문이었다. 이후 정권교체라는 구호는 계속됐지만 유권자들이 야당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이번 민주당 열풍은 ‘허리케인’이라고 부를 정도다. 국민의 뜻을 묻지도 않고 총리가 몇 번이나 바뀌면서도 생활이 나아진 게 없는 현실에 유권자는 분노했다.
세 번째는 선거쟁점이 외교안보 이슈보다는 교육 연금 보험 등 생활 이슈가 전면에 드러난 것이다. 1955년 체제를 좌우했던 이데올로기 정치로부터 생활정치로의 이행이 엿보인다. 2009년 총선은 일본 민주주의가 정상화되고 있음을 보여준 선거였다.
민주당 정권의 출범은 한국에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준다. 자민당 중진들과의 협상에 익숙해진 한국의 지도부로 보면 민주당은 낯설고 새로운 도전이다. 민주당은 한국에 그리 빚진 것도 없고 내놓을 만한 정치적 인맥도 없다. 하지만 민주당의 집권은 한국에 좋은 기회다.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을 주장한다. 민주당 정권의 도래는 한국과 일본이 손을 잡고 새 동아시아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 기회다.
한국으로 보면 일본의 대북정책이 신경 쓰인다. 근본적 변화는 없겠지만 대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구축 노력은 자민당 정권보다 힘을 얻을 것이다. 민주당 정권은 제재를 통한 압박과 더불어 대화와 협상을 통한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 달성을 위해 한국과 손잡을 수 있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자민당 정권은 2000년대 들어 역사와 영토문제 등을 전면에 내세워 한국과의 갈등도 서슴지 않았다. 아시아 국가와의 신뢰 구축을 강조하며 민족주의를 넘어서겠다는 민주당은 한국으로 보면 부담이 적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에 대한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 민주당은 사회당과 다르다. 강경보수는 아니지만 보수적 색채가 강하다. 아시아 외교를 강조하지만 반성과 사죄외교를 계속할 정당도 아니다.
따라서 한일관계 개선 메시지가 곧바로 나오지 않는다고 조바심을 내서는 안 된다. 먼저 양국 지도자들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서로 신뢰를 높여가는 게 우선이다.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2010년을 21세기 한일관계의 전환점으로 만들기 위해 양국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고 매끄럽게 조정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