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선 후 재일동포 사회가 한껏 달아오르고 있다. 일본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지방참정권을 이번에 따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재일동포 조직인 대한민국민단(민단)은 지방참정권을 놓고 20년 넘게 일본 정부와 싸워 왔지만 보수층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재일교포 등 영주외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를 공약으로 내세운 민주당이 압승하면서 지방참정권 획득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간사장 내정자도 최근 “내년 초 정기국회에 지방참정권 법안 제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20년 넘게 제자리걸음
“세금만 받아가고 참정권은 주지 않는 것은 권리 없이 의무만 강요하는 것이다.” 재일동포들은 참정권 문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런 불만을 털어놓는다. 재일 한국인은 일제의 식민통치로 인해 일본에 살게 된 특수한 역사적 배경이 있고 오랫동안 일본 지역사회에서 주민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참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단은 1988년 지방참정권 획득을 공식 결의한 후 지금까지 조직적인 운동을 벌여 왔다.
영주외국인에 대한 참정권 논의는 일본 사회에서 설득력을 얻어 왔다. 특히 1995년 2월 정주외국인에게 지방선거권을 인정하는 것은 위헌이 아니라는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이 나오면서 힘을 얻었다. 1994년 후쿠이 지방재판소가 영주외국인에 대한 참정권 배제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최고재판소가 재차 인정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일본의 각 지자체 지방의회는 영주외국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서 채택이 잇따라 채택률이 전 지자체의 77%(2003년 2월)에 이르고 있다.
일본 국회도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받아들여 2000년 영주외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 관련 법안의 심의를 시작해 성사 직전까지 가는 듯했으나 자민당의 반대로 물거품이 됐다. 여기에 2001년 9·11테러 후 일본의 우경화가 두드러지고, 장기 불황으로 외국인에 대한 일본 사회의 시선이 냉랭해지면서 지방참정권 문제는 지금까지 ‘잠자는 법안’이 돼버렸다.
○ 실현 가능성 높아…총련계는 반대
8·30 총선에서 민주당의 압승으로 일본 국회에서 영주외국인의 지방참정권 재논의는 물꼬를 틀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자민당보다 이 문제에 평소 적극적인 방침을 유지해 온 데다 선거 공약으로도 ‘영주외국인의 지방참정권 조기 실현’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 정권의 양대 축인 오자와 간사장 내정자도 11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도 영주외국인에 대한 대우는 중요하다”면서 “지방참정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내년 초 정기국회에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또 이번 총선 당선자 가운데 지방참정권 부여에 찬성하는 의원이 63%나 되는 점도 입법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민단 기관지인 민단신문이 최근 참정권과 관련해 의사표시를 한 의원 397명(정원 4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찬성 또는 찬성하는 편이 250명이었다.
물론 걸림돌도 남아 있다. 우선 민주당 내에서 우익 진영의 표를 의식한 반대 목소리도 만만찮다. 그만큼 민주당이 당내 입장을 조율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또 북한 국적을 가진 재일교포 조직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참정권 부여를 일본 동화정책이라며 반대하는 등 정주외국인 내에서도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 것도 풀어야 할 과제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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