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미국 워싱턴 도심에서 버락 오바마 정부 출범 이래 최대 규모의 반(反)오바마 시위가 벌어졌다. 궂은 날씨였지만 수만 명이 의사당 앞 광장인 내셔널몰에서 행진했다. 이념적인 지향성은 정반대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워싱턴의 낯익은 풍경이었던 대규모 시위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이날 시위는 올봄 오바마 정부의 재정정책에 항의해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던 티파티(Tea Party·미국 독립전쟁 때의 보스턴 티파티를 모티브로 한 집회)를 주관한 단체를 비롯해 여러 보수단체가 함께 주관했다. 주최가 느슨한 연합체이다 보니 참가자 성향도 범위가 넓었다. 다수는 건강보험 개혁과 재정적자를 비판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개중엔 “오바마는 실제론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또 오바마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하는 극단적 우파도 상당수 섞여 있었다. “사회주의를 원하면 러시아로 가라”는 구호도 눈에 띄었다. 일부 시위대 사이에선 9일 오바마 대통령의 의회 연설 도중 “거짓말”이라고 외쳐 여론의 지탄을 받은 조 윌슨 공화당 의원이 칭송 대상이 됐다. ‘생큐 조 윌슨’이라는 팻말이 수십 개 보였다. 사회자가 “오바마는 헌법을 지키겠다고 선서했다”고 외치자 군중은 “거짓말” “거짓말”이라고 연호했다.
이날 시위는 ‘보수파는 거리에 나서지 않는다’는 통념을 깼다. 조직력에 의한 동원이 아닌 자발적으로 참가한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팻말 글씨도 손으로 직접 쓴 게 대부분이었다. 지난해 선거 참패 후 무기력한 상태인 공화당은 이날 나타난 강경 보수파의 결집력을 주목했지만 상당수 참가자는 공화당에 대해서도 “무능하며 진정한 보수주의자도 아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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