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毒한 글로벌기업’ 아프리카에 뒤늦은 배상

  • 입력 2009년 9월 18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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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명 사망 등 10만 명 피해

英석유운송사, 독성물질 불법투기… 유엔 등 압박에 거액 지급 ‘백기’

처음엔 계란 썩는 냄새였다. 고무가 타는 것 같기도 한 역한 이 냄새는 곧 두통과 구역질, 설사, 호흡기질환, 신체 마비로 이어졌다. 일부 흑인들의 피부는 빨갛게 벗겨졌고 코에서는 피가 나기 시작했다. 2006년 8월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하수도와 쓰레기하치장 등에 버려진 독성폐기물은 15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또 최대 10만 명의 주민을 환자로 만들었다.

분노한 주민들은 폐기물을 내다버린 영국의 석유운송회사 트라피구라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린피스 등 국제환경단체의 도움을 받아 영국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된 이 소송은 3년 넘게 뜨거운 법정 공방이 계속됐다. 17일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트라피구라가 주민 3만 명에게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트라피구라는 전 세계 42개 도시에 사무실을 둔 글로벌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이 730억 달러(약 87조9000억 원)로 코트디부아르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에 이른다. 이 회사는 폐기물 처리비용을 아끼기 위해 아프리카 빈국에 독성물질을 불법 투기한 사실이 드러나자 “상부가 몰랐던 만큼 책임이 없고 폐기물의 유독성도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음 달 법원에서 자사가 투기한 폐기물이 기형아 출산, 유산 등에 미치는 영향을 본격적으로 검증받게 될 처지에 놓이자 돌연 배상금 지급에 합의했다. 16일 유엔이 이 사건에 대한 트라피구라의 책임을 강하게 비판하는 보고서를 내놓은 직후였다. 구체적인 배상금액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의 한 주민은 “사건 당시 폐기물에 노출됐던 아내가 아직도 목의 통증을 호소하고 있지만 도와줄 사람이 없다”며 한숨 쉬었다. 주민 일부는 2007년 트라피구라가 코트디부아르 정부에 폐기물 청소비용 등으로 1억 파운드(약 1992억 원)를 지불했을 당시 보상금을 받았지만 1인당 270파운드(약 53만 원) 안팎에 그쳤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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