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민주당이 정권을 잡자마자 효용성이 의심되는 대형 공공사업에 칼을 대기 시작했다. 세금 낭비를 철저히 없애겠다고 국민과 약속한 민주당 정권은 일본 최대 규모의 다목적댐인 얀바댐을 예산낭비 1호로 지목하고 공사 중단을 발표했다. 총사업비의 70%가 들어간 국책사업이지만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지면 과감히 접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 하지만 관련 지방자치단체들은 “정권교체로 국가 추진 사업이 하루아침에 백지화되는 것은 비민주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얀바댐을 둘러싼 논란은 국내에서 효율성 논란이 일고 있는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와 닮았다. 논쟁의 한복판에 있는 얀바댐 건설 현장인 군마(群馬) 현 나가노하라(長野原) 지역을 취재했다.》
“우리는 정부 정책에 번번이 농락당했다.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이 지역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달 29일 찾은 나가노하라 지역 주민들의 불만은 예상을 크게 뛰어넘었다. 50년이 넘도록 주민들끼리 찬성과 반대로 갈려 반목해오다 겨우 합의에 이른 얀바댐이 정부의 일방적 선언으로 좌초한 데 대한 분노였다. 수몰지구 중 하나인 나가노하라의 가와라유 온천가에서 료칸(일본 전통여관)을 운영하는 다케다 씨는 “지역 주민들이 그토록 반대했지만 국가가 결정한 사업이라 결국 받아들였다”면서 “정권교체가 됐다고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가와라유 온천가는 한때 잘나가던 온천 료칸 지역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낡은 온천 료칸들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운 모습으로 남아 있을 뿐 옛 명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50년 넘게 공중목욕탕 ‘오유(王湯)’를 운영하고 있는 여주인은 “이 지역이 수몰된다고 해 20년 가까이 목욕탕 개·보수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언제 허물릴지 모르는 시설에 큰돈을 들여 개·보수를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설비가 낡았으니 손님의 발길이 뜸해지고, 벌이가 시원찮으니 주민들이 온천가를 떠나는 일이 계속되면서 가와라유 온천가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한창 시절 18곳에 이르던 료칸 중 현재 영업을 하는 곳은 7곳에 불과하다.
○ 중앙정부 대 지자체 갈등으로 번져
얀바댐 중단에 대한 비판 여론은 인근 지자체로 확산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건설 중단을 표명한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국토교통상을 독재자라고 공격하는 등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댐 하류 지역에 위치한 도쿄(東京) 이바라키(茨城) 도치기(회木) 사이타마(埼玉) 지바(千葉) 등 5개 지자체는 댐 건설에 따른 물 공급과 수해대책을 기대해 왔다.
군마 현의 오사와 마사아키(大澤正明) 지사는 최근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 국가는 홍수대책과 물 공급을 위해 얀바댐 건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면서 “댐 건설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공개해 검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른 지자체에 비해 수자원이 부족한 사이타마 현의 우에다 기요시(上田淸司) 지사도 “댐은 자민당과 국민의 약속이 아니라 중앙정부와의 계약”이라며 “정부가 계약을 파기하려면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따졌다. 일본의 특정 다목적댐 법에 따르면 댐 건설을 중지할 때는 관련 지자체장의 의견을 듣도록 의무화돼 있는데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은 문제라는 주장이다.
○ 비용 대비 효과 낮은 공공사업 철폐
얀바댐에 대한 민주당 정권의 태도는 확고하다. 돈이 아무리 많이 들어갔어도 비용 대비 효과가 낮은 사업은 모두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정권은 얀바댐 상류에 이미 댐이 5개 있어 홍수 대비 효과가 의심되고 물 소비도 줄고 있어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얀바댐 건설을 계획했던 1950, 60년대는 일본 경제가 고도성장기의 절정에 달해 인구가 급증하고 물 수요도 빠르게 늘어나던 시기였지만 현재는 물 수요가 줄고 있다. 실제로 도쿄는 1985년 물 수요가 1일 931만 t이었지만 2013년에는 1일 600만 t으로 3분의 1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댐 건설을 중지하면 730억 엔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주당과 환경단체에 따르면 공사를 지속하면 본체 공사 620억 엔과 앞으로 들어갈 추가비용 1000억 엔 등 총 2390억 엔이 필요하다. 하지만 건설을 중지하면 사업 포기에 따른 지역 위로금과 6개 지자체가 납부한 사업비 반환 등을 합쳐 추가자금이 1660억 엔에 그친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댐 건설을 주장하는 지자체들은 오히려 댐을 중단하면 840억 엔이 손해라고 맞서고 있다. 댐을 포기하면 전체 공사비 4600억 엔(약 6조 원) 가운데 남아있는 1390억 엔을 아낄 수 있지만 공사 포기에 따른 주민 보상금과 지자체 사업비 반환금 등이 2230억 엔에 달해 오히려 손해라는 것. 양측의 셈법이 이처럼 갈리는 데는 댐 완공 후 유지비와 지자체 사업비 반환금에 대한 산정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권은 앞으로 얀바댐뿐 아니라 현재 건설하고 있거나 검토 중인 40여 개 댐에 대해 모두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민주당 분석 자료에 따르면 얀바댐의 비용 대비 효과지수는 3.4인 데 비해 다른 댐은 대부분 이를 밑돌고 있다. 앞으로 ‘제2, 제3의 얀바댐’이 줄줄이 나올 가능성이 높지만 지자체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민주당 정권이 이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나가노하라(군마 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 얀바댐은 어떤 곳
1952년부터 댐 추진… 사업비 4600억엔 역대 최대
특히 800년 된 전통 온천 료칸 지역인 가와라유 온천 지역 주민들은 유서 깊은 온천가와 명승지인 아가쓰마(吾妻) 계곡을 보호해야 한다며 항의투쟁을 벌였다. 30여 년간 댐 건설을 둘러싸고 반목해온 주민들은 1985년 결국 국가의 설득을 받아들여 ‘백기’를 들었다. 댐 건설을 수용하는 대신 정부와 지자체가 내놓은 수몰지역의 활성화 계획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하지만 이후에도 토지보상 문제 등으로 사업이 지연되면서 얀바댐의 최종 완공 목표는 2015년으로 밀려났다.
나가노하라 지역 곳곳에서는 이달부터 본격 시작할 예정이었던 댐 본체 공사에 맞춰 대체도로와 교각, 철도 공사가 한창이다. 올 3월 말 현재 대체도로 및 철도 공사는 이미 70% 완료된 상태. 또 수몰될 5개 지구 주민의 이전작업도 속속 진행돼 이전 대상 470가구 가운데 357가구가 이전을 마쳤다.
얀바댐은 높이와 폭이 각각 116m와 336m, 총저수량이 1억750만 m³에 이르는 초대형 다목적댐이다. 총 예상사업비가 4600억 엔으로 일본 댐 역사상 최대 규모다. 얀바댐은 당초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한 치수형 댐으로 검토됐으나 수도권에 물 공급을 위한 수리형 댐 기능이 더해졌다. 1950, 6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기 시절 인구 증가와 물 부족이 예상된 데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해당 지자체인 군마 현 외에도 댐 하류에 위치한 도쿄 등 5개 지자체가 사업비를 공동 부담해왔다.
나가노하라(군마 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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