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선생님의 ‘하이 파이브’ 기적을 낳다

  • 입력 2009년 10월 14일 02시 57분


미국 뉴멕시코 주 토하치 초등학교에서 조지 비커트 교장이 임기를 마치기 전인 지난달 학생들을 가르치던 모습. 토하치=AP 연합뉴스
미국 뉴멕시코 주 토하치 초등학교에서 조지 비커트 교장이 임기를 마치기 전인 지난달 학생들을 가르치던 모습. 토하치=AP 연합뉴스
美벽촌 인디언마을 초등교 3년새 수학 성취도 15%→78% ‘꼴찌의 반란’
생활에 지친 학생들 껴안아
쪽지시험 보며 목표치 올려
“실력향상 과정 즐기게 해야”

‘따르릉∼.’

초등학교 5학년 대리우스는 하교 종이 울리자 한숨부터 쉬었다. 얼른 집에 가 가축에게 여물 주고 농장 일을 돌봐야 한다. 가끔 전기와 수도마저 끊기는 궁색한 살림살이. 열 살이라고 놀 형편이 아니다. 막막함이 밀려왔지만 친구 샤니카 앞에선 내색하기도 힘들다. 샤니카는 24km나 떨어진 집에 가면 해질녘까지 숙제할 틈도 없다. 하긴 70km가 넘게 떨어진 곳에서 버스 타고 다니는 아이도 있지만.

2006년만 해도 미국 뉴멕시코 주 벽촌 ‘토하치’에 있는 토하치 초등학교 아이들의 일상은 이런 모습이었다. 인구 1000명 남짓에 90%가 가난한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 마을. 심지어 학생 80% 정도는 학비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 공부가 잘될 리 없다. 같은 해 읽기 과목 학업 성취도가 겨우 28%. 미국 전체 평균 66%보다 한참 뒤지는 ‘전국 꼴찌’는 당연했다.

하지만 3년 만에 이 학교는 ‘역전 만루홈런’을 쳤다. 올해 읽기 과목 성적은 71%로 전국 상위랭크에 들었다. 수학 학업 성취도 역시 2006년 15%에서 무려 78%로 뛰어올랐다. 성적만 보면 대도시 사립학교를 웃도는 최상위권이다. AP통신은 “조그만 시골학교의 기적에 미국 교육계가 놀라고 있다”고 12일 전했다.

그 중심엔 조지 비커트 교장이 있었다. 3년 전 부임한 교장은 토하치의 문제를 단박에 알아봤다. 아이들은 풀죽어 있었고, 학부모는 자식 챙길 틈이 없었다. 교사들 역시 그러려니 했다. 비커트 교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활기찬 학교 만들기’였다.

매일 아침 교장은 정문에서 학생을 맞았다. 일일이 이름 부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모두 껴안아주고 손바닥도 마주쳤다. 교사들에게 ‘즐거운 교실’을 부탁했다. 지겨운 기색이면 교장이 아이들을 끌고 가 농구를 했다. 그는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학생과 교사의 신뢰”라며 “처음엔 정신 나갔다고 여기던 교직원들도 하나둘씩 동참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마음의 벽을 허문 다음 전략은 ‘목표와 당근’이었다. 일단 매주 쪽지시험을 만들었다. 낮은 성적을 꾸짖기보단 학생마다 달성 가능한 목표를 줬다. 성공하면 ‘수학 몬스터’ 등 별칭을 달아줬다. 한반 모두 패스하면 파티를 열었다. 비커트 교장은 “결과물이 아닌 실력이 늘어나는 과정 자체를 즐기도록 하는 게 포인트”라고 말했다.

비커트 교장은 최근 임기를 마치고 토하치를 떠났다. 학부모와 학생 모두 아쉬움과 눈물 속에 그를 보냈다. 교장은 “그들 덕에 내가 행복했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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