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경찰 ‘슈타지’ 요원 26만명 동독 총리, 소련에 넘기려 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0일 03시 00분


옛 서독 연방정보국 기밀정보 공개

옛 서독 연방정보국(BND)이 스파이들의 첩보 활동을 통해 수집 기록했던 동독 관련 기밀정보들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이는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앞두고 BND가 최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등 언론의 요청에 따라 정보 공개를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르면 한스 모드로 동독 총리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해외첩보 조직을 통째로 넘기겠다고 제안했다. 모드로 총리는 “슈타지의 운영비와 인건비를 책임져 준다면 요원 26만 명이 소련 연방보안국(KGB)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조직과 업무를 바꾸겠다”고 했다. 촘촘한 인력과 첩보 네트워크를 그대로 넘겨받을 수 있다는 ‘유혹’에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솔깃해했다고 보고서는 기록해 놓고 있다. 이후 KGB는 슈타지 요원들을 일부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관계자들은 부인했다.

또 이번에 공개된 문건에는 고르바초프가 1989년 6월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을 만났을 때 “동독에서 소련 병력을 철수하겠다”고 한 내용도 담겨 있다. 이는 소련이 공산주의 붕괴 이전부터 이미 동독 보호 의무에서 발을 빼려 했고, 베를린 장벽의 붕괴도 용인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BND는 전화 감청과 서신 검열 외에 정보 접근이 유리한 여성 및 기자나 사업가, 여론조사원으로 가장한 정보원들을 풀어 정보들을 수집한 것으로 드러났다. 6개월간 진행된 600여 건의 동독인 인터뷰 내용은 30여 명의 전문 분석가가 분류 정리해 보고했을 정도다. 이 중에는 장벽 붕괴 직전 “150만 명의 동독인이 서독으로 망명할 것”이라는 BND의 당초 예측과 달리 이민 신청자 수는 11만3500여 명에 그쳤던 것이나 장벽 붕괴 직전인 1989년 9월 13일 생존해 있던 호네커를 사망한 것으로 보고하는 등 잘못된 정보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슈피겔은 BND의 이번 자료 공개가 비밀주의를 고수하는 소련의 KGB나 영국의 MI6, 미국 중앙정보국(CIA)과는 달리 냉전 종식 전후 역사에 대한 재평가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