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업률 48% - 가난 ‘검은 탄식’ 인구 5명중 1명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 학비 마련위해 마약중개도
● 간질병 초등생 ‘되찾은 꿈’ 한국 동갑내기의 도움받아 약도 사고 학교도 다니게돼 “커서 의사가 되고 싶어요”
12일 세네갈 고레 섬(Gor´ee Island)으로 가는 길은 ‘검은 잉어’들로 북적였다.
유람선이 섬에 200m 정도로 근접하자 검은 물고기 같은 물체들이 바다를 하얗게 가르며 일제히 몰려들더니 순식간에 유람선을 에워쌌다. 물 위로 얼굴을 내민 건 흑인 소년들이었다.
100여 명의 ‘인간 잉어’는 관광객을 향해 “머니!”라고 외쳤다. 배 위에서 동전이 한 닢 떨어질 때마다 수십 명이 물속을 파고들었다. 모이를 향해 달려드는 고기 떼의 형상이었다.
고레 섬은 소년들의 조상이 노예로 팔려가던 곳. 아메리카 대륙과 가까워 16∼18세기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노예감옥 등 당시 상처가 보존된 이 섬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면서 관광명소가 됐다.
섬 소년들은 운 좋게 한 닢을 낚으면 입에 넣고 다시 동전 사냥에 나선다. 배가 하루 두세 번 오가기 때문에 종일 해도 50∼100CFA프랑(약 150∼300원)짜리 동전을 몇 개 잡는 게 고작이다.
배가 섬에 도착한 뒤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는 관광객 사이로 큰 소년이 작은 소년의 머리를 연거푸 물속에 밀어 넣었다. 고라(12)와 와드(9) 형제였다. “장난이냐, 고문이냐”고 묻자 고라는 “훈련”이라고 했다. “둘이 열심히 해야 하루에 1달러를 채울 수 있다”고 했다.
고라는 나이 차가 14세인 미혼모 어머니와 살면서 생업의 짐을 함께 졌다. 그는 아직 학교에 가본 적이 없다.
고라와 동갑인 모사는 처지가 한결 낫다. 모사는 세네갈 디우르벨에서 초등학교에 다닌다. 다만 교실 밖에서 수업을 듣는다. 창문 밖에 의자를 놓고 그 위에서 창틈으로 칠판을 본다. 모사는 간질 환자다. 세네갈에서 간질은 주변 사람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전염병으로 통한다. 교실에서 쫓겨났지만 모사는 창틀을 책상 삼아 꿋꿋이 공부한다.
10일 수업에 열중하던 모사가 필기를 하다 노트에 끼워진 사진 한 장을 떨어뜨렸다. 사진 속 주인공은 한국에 사는 동갑내기 김지은 양. 6년 전 어린이재단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김 양이 없었다면 모사는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모사의 부모는 땅콩을 튀겨 팔며 하루 2, 3달러를 번다. 학교에 다니려면 등록비 12달러에 학용품과 책값으로 한 해 30∼40달러가 들어간다. 병원까지 다니려면 400달러가 든다. 5남매를 키우는 모사의 부모에게 학교와 병원은 언감생심이었다.
김 양이 보내는 매달 2만 원의 후원금이 모사를 절망에서 건져냈다. 김 양도 아버지가 일할 수 없는 장애인이라 넉넉하진 않지만 용돈을 아껴 돈을 부친다. 15달러 남짓한 그 돈으로 모사는 학비를 내고 약을 샀다. 어렵게 학교 문턱을 넘고도 간질 때문에 교실 문턱은 넘지 못했지만 모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달 치른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상위 3%의 성적을 받기도 했다. 모사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한국 돈 2만 원이 만든 꿈이다.
이날 낮 기온은 43.5도까지 올라갔다. 학교 근처 가게에서 500mL짜리 생수를 사니 가격이 300CFA프랑(약 900원)이다. 모사네 가족 하루 수입의 3분의 1이다. 세네갈 인구 5명 중 1명은 1달러 미만으로 하루를 산다. 여기에 실업률은 48%나 된다.
어린이재단 서아프리카 담당 우스만 씨는 “세네갈은 아프리카로 마약을 공급하는 교두보인데 수도 다카르로 상경한 청소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마약중개상이 되는 사례가 많다”며 “그중 상당수는 학비를 마련하려고 위험을 무릅쓴다”고 말했다.
모사의 학교에서 나오는 길, 수십 명의 아이가 기자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잔돈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아이들은 멈추지 않았다. 보다 못한 교사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돈이 아니라 펜을 달라네요.”
디우르벨 (세네갈)=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고사리손 기부’ 3년새 5배이상 늘어 ▼
성인들이 아프리카 어린이들과 일대일 결연을 맺어 도와주던 국제 후원이 청소년 간의 ‘고사리손 기부’로 바뀌고 있다. 혼자 자란 아이들이 또래들과 형제나 남매 관계를 맺은 뒤 용돈을 아껴 돈을 보내주고 편지도 주고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세네갈의 한 미혼모(14)는 이혜진 양(13)이 매달 2만 원씩 1년째 도와준 덕분에 아이를 키우기 위해 40대 남성과 결혼할 뻔했던 위기를 모면했다. 유럽 프로축구 선수를 꿈꾸는 에티오피아의 코르사(11)는 김유정 양(11)의 후원으로 구걸 대신 학교에서 훈련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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