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부정 시비에 휩싸였던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선거가 다음 달 7일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과 2위 득표 후보인 압둘라 압둘라 전 외교장관 간 결선투표를 통해 승부를 가리게 됐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8월 20일 실시된 선거에서 결선투표 없이 당선을 확정짓는 데 필요한 과반수 획득에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결선투표 참여를 선언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20일 보도했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당초 1차 개표에서 결선투표 없이 당선이 가능한 54.6%의 표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유엔이 지원하는 선거감독기구인 선거민원위원회(ECC)가 19일 부정이 확인된 유효표 130만 표를 무효 처리하면서 카르자이 대통령의 득표율이 50% 미만으로 떨어졌다.
아프간 독립선거관리위원회(IEC)의 누르 모하마드 누르 대변인은 이날 “카르자이 후보의 득표율이 49.67%로 50%에 미치지 못했다”며 “이에 따라 다음 달 7일 결선투표가 열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지금은 재검표 문제를 논할 때가 아니라 나라의 안정과 통합을 위해 전진할 때”라며 “결선투표 결정은 민주주의를 항한 일보 전진”이라고 강조했다. 카르자이 대통령과 함께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존 케리 미 상원 외교위원장은 “카르자이 대통령이 오늘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줬다”며 “대통령의 결단 덕분에 아프간이 맞이한 엄청난 불확실성의 도전이 대단한 기회로 전환됐음을 믿는다”라고 반겼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카르자이 대통령의 결선투표 수용 결정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투표 부정은 없었다며 결선투표 수용을 거부해왔던 카르자이 대통령이 강경노선을 포기한 것은 미국과 유럽의 전방위 압박이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뉴욕타임스는 케리 위원장이 19일 수도 카불 대통령궁에서 카르자이 대통령을 만나 2시간 동안 설득한 끝에 재검표 결과 수용 의사를 받아냈다고 보도했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또 같은 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의 통화에서도 “아프간 헌법질서를 존중하겠다”고 수용 의사를 밝혔다.
결선투표일이 다음 달 7일로 잡히기는 했으나 성공적으로 치러질지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우선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한 8월 20일 선거 때와 비슷한 광범위한 부정이 결선투표에서도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탈레반 반군의 선거테러와 종족 간 갈등 등도 걸림돌로 예상된다고 AP통신은 지적했다. 겨울철 추위가 본격화하기 전에 재빨리 결선투표가 치러져야 하는데 수만 명의 유권자를 움직이는 부족 지도자들이 선거에 비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카르자이 대통령도 이러한 점을 우려해 “유권자들이 안전에 대한 걱정 없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평화로운 결선투표를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압둘라 후보 진영은 “결선투표를 치를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치안이나 날씨 문제로 결선투표가 내년 봄 이전에 열리지 못하면 양 후보가 참여하는 과도정부를 출범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압둘라 후보 측은 또 “임기가 끝난 카르자이 대통령이 (내년 봄까지) 몇 달간 더 재임하도록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카르자이 대통령과 압둘라 전 장관이 권력을 나누는 방안이 현실적인 해법이라는 목소리도 부상하고 있었지만 결선투표 실시 결정으로 일단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AP통신은 미국이 결선투표보다 권력 분점을 더 선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