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서부의 작은 시골마을 우드지르에 사는 주부 산지타 하시바단 씨의 삶은 최근 크게 편해졌다. 후텁지근한 상온에 놔둔 우유를 마실 때마다 끓이지 않아도 되고, 매일 아침 가족들에게 찬물과 신선한 야채도 줄 수 있게 됐다. 70달러(약 8만1900원)를 주고 산 미니냉장고 덕분이다.
작은 아이스박스처럼 생긴 이 소형 냉장고 ‘리틀 쿨(little cool)’의 가격은 기존 최저가 냉장고 가격의 3분의 1 수준. 하시바단 씨처럼 돈이 없어 냉장고를 살 수 없었던 저소득층을 겨냥해 만든 제품이다. 비좁은 슬럼가 집 내부에 맞게 부피가 작아야 한다는 점, 수시로 거처를 옮기는 막노동자들이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이동식이어야 한다는 점, 전기 소모량을 최소로 줄여야 한다는 점 등을 모두 고려한 디자인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초저가 전자제품들이 인도에서 속속 선보이고 있다. 기업들이 시장을 확대하려 빈자(貧者)를 겨냥한 마케팅과 제품 개발을 강화하면서 저가 제품시장이 새로 열리고 있는 것이다. 21일 월스트리트저널은 “인도에서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극빈층까지 대상으로 한 새 제품 개발이 이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나무를 연료로 쓰는 가정용 화로 ‘우르자 스토브’의 가격은 고작 23달러(약 2만6910원). 값은 싸지만 연기가 적게 나면서도 열효율은 3배까지 높인 제품으로 주부들에게 큰 인기다. 20달러(약 2만3400원)짜리 저가 휴대전화의 사용료도 1분에 2센트밖에 되지 않아 한 달에 500만 명의 신규 가입자가 몰렸다. 자동차그룹 타타가 출시한 2200달러(약 257만4000원)짜리 자동차 ‘나노’도 이 분야 대표 상품으로 꼽힌다.
1000달러(약 117만 원)짜리 심장박동 모니터 등 기존 제품 가격의 10분의 1밖에 안되는 의료장비들도 돈이 없어 검진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에게 반가운 상품이다. 또 무선통신 시스템과 지문 스캐너로 신원을 확인하고 곧바로 송금, 계좌이체 등을 할 수 있도록 한 이동식 금융 시스템 개발은 한 달 운영비가 50달러(약 5만8500원)면 충분한 미니 은행지점을 가능하게 했다.
이런 전자제품 개발은 1980년대 유니레버가 치약과 비누, 샴푸, 세제 등의 제품을 소형화해 가격을 낮췄던 ‘봉지 혁명(sachet revolution)’과는 차원이 다르다. 양을 줄여 값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기술 혁신으로 질과 성능을 갖추면서도 저가에 공급하는 것이 핵심이다.
인도 기업들은 이제 전 세계 저소득층의 구매력과 수요를 조사한 뒤 전략적으로 신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아프리카나 남미의 다른 저개발국으로 수출을 시도하는 것도 그 때문. 구매력이 없어 기업들로부터 외면당해 온 슬럼가 시장이 미개척 시장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가난한 소비층의 눈높이와 삶의 질에 대한 욕구가 크게 높아진 점도 이들의 개발 의욕을 부추겼다. 워낙 값이 싸다 보니 마진이 높진 않지만 엄청난 판매량이 그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기업들은 보고 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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