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 고어 연설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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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3일 03시 00분


21일 수원 녹색구매세계대회 개막식 참석
“5분만 취재허용” 지나친 언론통제 눈살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사진)이 21일 경기 수원시에서 진행된 제3회 녹색구매세계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한 것을 두고 뒷말이 많다. 1993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 부통령을 지낸 그는 퇴임 후 지구온난화를 경고하는 저서와 강연, 다큐멘터리 영화 출연으로 2007년에는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그 때문에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번 대회에 고어 전 부통령이 참석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2개월여 전부터 국내외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이날 고어 전 부통령의 행태를 지켜본 많은 환경운동가와 행사 관계자들은 뭔지 모를 씁쓸함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기조연설이 있은 수원의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강당에는 그를 보려는 참가자 1000여 명이 빼곡히 들어찼다. 취재진도 100여 명이나 왔다. 고어 전 부통령에 앞서 축사를 한 이만의 환경부 장관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축하인사와 함께 고어 전 부통령을 향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장내 박수를 유도하기까지 했다.

고어 전 부통령의 차례가 되자 이번 대회의 좌장을 맡은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이 사회자를 제치고 직접 단상에 올랐다. 김 전 장관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영어로 앨 고어를 소개하겠다”고 했다. 미국 부통령 재임 기간부터 시작해 상원의원 경력, 현재 미국 방송국 커런트TV 사장, 제너레이션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 회장, 애플컴퓨터 사외이사, 구글 비공식 자문역, 기후보호동맹 회장 등 세세한 이력이 모두 소개된 뒤에야 끝났다.

이에 앞서 이번 대회조직위에서는 고어 전 부통령 측 에이전트의 요청이라며 각 언론사로 공문을 보내 “5분간 질의응답 없이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이후에는 기자들 모두 퇴장해야 하며 이를 어길 시 손해배상 등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실제로 이날 5분이 되자 행사진행 요원들의 제지로 방송 카메라와 기자들은 모두 대강당을 빠져나와야 했다. 그러나 연설의 첫 5분은 이번 대회가 수원에서 열리게 된 데 대한 의례적인 인사와 축사만 있었다. 이번 대회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비자들이 저탄소 친환경제품을 구매하는 똑똑한 소비로 환경위기를 앓고 있는 지구를 구하자는 취지에서 개최된 행사다.

고어 전 부통령은 세계에서 몇 손가락에 들 만큼 영향력 있고 바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번 행사에도 전용기를 타고 왔고, 기조연설 이후 오찬만 한 뒤 곧바로 중국으로 떠났다. 한 참석자는 “바쁜 일정을 쪼개 온 것이라 전 세계 시민들에게 환경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동참을 촉구하는 데 더없이 좋은 기회로 여겨졌는데 철저한 언론통제를 보고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수원=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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